이봉한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촉법소년 나이의 하한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비행소년은 일반 소년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 차이는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것으로 강제적 충동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할까? 또는 그 차이가 '사회적'인 것이어서 그 강제적인 부분이 비행 태도를 형성하는 걸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비행소년은 줄곧 비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소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시간을 일상적인 법 준수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비행소년이 청소년 후기나 성인이 되며 비행을 그만두고 법을 준수하게 된다. 즉 대부분 비행자는 구속과 자유 사이를 표류하면서 더 자유롭게 행위를 선택한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물론 표류가 전체의 비행을 설명하는 건 아니다. 법규범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것(표류)은 자신과 규범을 묶어주는 유대가 끊어져 둘러대기 가능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때다. 행위를 변명이나 구실로 정당화하려는 것을 '비행의 중화'라 일컫는다. 교사를 폭행한 학생은 자신의 행위를 '교사의 불공평에 대한 복수'(책임의 부정)라 하고, 방화청소년은 '호텔은 화재보험이 들었으니 손해가 없다'(가해의 부정)고 하며, 집단폭행을 한 여학생은 '내 남자친구를 유혹한 피해자는 맞아도 싸다'(피해자 부정)고 하면서 행위를 정당화할 것이다.
어른들이 불법을 정당화시키면서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은 비행 청소년과 차이가 있을까? 재판이라는 공적 제도이건 일상생활이건 어른들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어휘나 표현방법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 제한속도를 위반한 사람이 "도로에 차가 별로 없고 제한속도도 너무 낮게 책정돼 있으니까"고 변명하거나 음주 운전자들이 "검사, 판사들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식으로 비난자를 비난한다. 비행자들이 비행을 중화할 때에 사용되는 어휘도 그것들과 같다.
중화는 행동의 법 위반적 성격을 지우고 법 위반을 단순한 행위로 바꿔버린다. 법 위반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어도 그 행동을 '받아준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자신의 위반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당화하고 사회규범의 준수 요청을 희석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화는 일탈 행동의 수위나 횟수를 심화시킨다. 주의할 점은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청소년이나 직장에서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과 같이 사회적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중화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다. 반대로 애착이 없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과 연대감이 없으므로 규범을 위반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따라서 규범 위반을 중화해야 할 필요가 적을 것이다.
비행 청소년에게 어른의 모습이 투영됐고 사회 부조리가 대변된다. 청소년 대책은 형벌 강화의 법 개정보다 사회 유대감을 회복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눈물 어린 노력이 급선무가 아닐까? 법감정의 강렬함이 법 개정을 촉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가진 부모의 입장이 돼 법 이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접근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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