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청소년이 표류한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청소년이 표류한다

이봉한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 승인 2022-08-08 14:55
  • 신문게재 2022-08-09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이봉한 교수
이봉한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1999년 미국에서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친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의 엄마가 쓴 책 이름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라는 서평도 달려있다. 피해자 유족만이 아니라 가해자 부모도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까? 한국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사건들을 찾아보게 됐다. 2018년 여중생을 불러내 술을 마시게 한 후 숙박업소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한 사건과 여고생을 이틀에 걸쳐 또래 친구들이 각목으로 폭행한 사건, 2019년 중학생이 수업 중 잠을 자다 이를 훈계한 교사의 안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코뼈를 부러뜨린 사건, 2022년 호텔 9층에 투숙 중이었던 10대 소녀가 라이터로 침대 매트리스에 방화한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것도 가볍지 않은 사건이다.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촉법소년 나이의 하한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비행소년은 일반 소년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 차이는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것으로 강제적 충동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할까? 또는 그 차이가 '사회적'인 것이어서 그 강제적인 부분이 비행 태도를 형성하는 걸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비행소년은 줄곧 비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소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시간을 일상적인 법 준수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비행소년이 청소년 후기나 성인이 되며 비행을 그만두고 법을 준수하게 된다. 즉 대부분 비행자는 구속과 자유 사이를 표류하면서 더 자유롭게 행위를 선택한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물론 표류가 전체의 비행을 설명하는 건 아니다. 법규범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는 것(표류)은 자신과 규범을 묶어주는 유대가 끊어져 둘러대기 가능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때다. 행위를 변명이나 구실로 정당화하려는 것을 '비행의 중화'라 일컫는다. 교사를 폭행한 학생은 자신의 행위를 '교사의 불공평에 대한 복수'(책임의 부정)라 하고, 방화청소년은 '호텔은 화재보험이 들었으니 손해가 없다'(가해의 부정)고 하며, 집단폭행을 한 여학생은 '내 남자친구를 유혹한 피해자는 맞아도 싸다'(피해자 부정)고 하면서 행위를 정당화할 것이다.

어른들이 불법을 정당화시키면서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은 비행 청소년과 차이가 있을까? 재판이라는 공적 제도이건 일상생활이건 어른들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어휘나 표현방법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 제한속도를 위반한 사람이 "도로에 차가 별로 없고 제한속도도 너무 낮게 책정돼 있으니까"고 변명하거나 음주 운전자들이 "검사, 판사들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식으로 비난자를 비난한다. 비행자들이 비행을 중화할 때에 사용되는 어휘도 그것들과 같다.



중화는 행동의 법 위반적 성격을 지우고 법 위반을 단순한 행위로 바꿔버린다. 법 위반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어도 그 행동을 '받아준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자신의 위반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당화하고 사회규범의 준수 요청을 희석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화는 일탈 행동의 수위나 횟수를 심화시킨다. 주의할 점은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청소년이나 직장에서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과 같이 사회적 애착이 강한 사람들이 중화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다. 반대로 애착이 없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과 연대감이 없으므로 규범을 위반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따라서 규범 위반을 중화해야 할 필요가 적을 것이다.

비행 청소년에게 어른의 모습이 투영됐고 사회 부조리가 대변된다. 청소년 대책은 형벌 강화의 법 개정보다 사회 유대감을 회복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눈물 어린 노력이 급선무가 아닐까? 법감정의 강렬함이 법 개정을 촉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가진 부모의 입장이 돼 법 이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접근이길 희망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