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 대표 |
낯선 곳에 가면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 후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냄새로 그곳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구별하기도 하고, 냄새를 통해 몸에 대한 중요한 정보도 알 수 있다. 냄새는 잊고 있었던 기억도 떠올리게 한다.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음식을 잊지 못할 때 맛보다는 냄새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후각이 청각이나 시각보다 오래가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후각은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그에 동반하는 기억과 감정까지 같이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감각기관으로, 인간의 오감 가운데 기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 냄새가 후각적인 표현을 의미하지 않음을 잘 알지만, 직업병이랄까 갑자기 따뜻한 사람 냄새는 어떤 과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과일의 향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딸기향이다. 꽃으로 표현하면 장미향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딸기가 시작되는 계절이 오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달콤하고 매혹적인 딸기 냄새를 먼저 맡게 된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모두에게 존재감을 당당히 알린다.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하는 딸기향은 먹고 사라져도 손끝에 남아 옷 끝에 남아 오랫동안 그 존재감을 남긴다.
딸기가 아니더라도 오렌지, 귤 등 과일로 대표되는 향들이 많이 있다. 복숭아의 은은한 향과 만감류인 천리향은 향이 천리를 간다고 하여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 나는 수박향을 추천하고 싶다. 수박의 본연의 향이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박에서도 무슨 향이 나지? 하면서 잠시 향을 생각할 정도로 수박향은 존재감이 강렬하지 못하다. 하지만 잠시만 눈을 감고 수박을 떠올린다면 또 생각이 날듯한 오묘한 향이다.
8월 무더운 여름에 수박을 자를 때의 향은 참 근사하고 조심스럽다. ‘쓱’ 하고 칼을 대면 잘 익은 수박은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수박의 알맹이를 드러낸다. 그 순간 녹색의 수박 껍질이 잘리면서 나는 은은한 숲의 향기와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드러나는 수박의 빨간 과실의 달콤한 향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에 나는 향기는 너무나도 따뜻하다.
시원한 수박을 자르는 순간에 두 향기가 합쳐져서 나에게 따뜻한 향으로 다가오는 과일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아쉽게도 이 순간의 수박 향은 그 어떤 과일보다 빨리 사라진다. 숲의 향기가 사라지고 남아있는 달콤한 수박의 과즙 향도 수박을 먹는 순간 그 정도의 시간만큼만 존재하다가 공기 중으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김경미 시인의 '카프카식 이별'이라는 시집에는 수박 냄새를 용서의 냄새라고 표현한 문구가 있다. 용서의 냄새라니 역시 시인의 상상은 평범함을 뛰어넘는다. 시인처럼 멋진 표현을 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본다면 8월 무더운 여름날 찰나의 수박 향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이의 향을 침범하지도 않지만 위로가 되어주는 향, 너무 짧아서 사라짐이 아쉽지만 그 사라짐마저 알 수 없는 향, 하지만 그 향이 그리워서 다시 한번 수박을 자르게 되는 향 나에게 수박의 향은 찰나의 위로이며 소소한 기쁨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수박을 자르며 위로받는 지금 이 순간의 글쓰기가 늦더위를 잊게 해준다.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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