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유성구청장. |
어르신들은 작금의 디지털 환경에 대해 '나이 먹은 사람은 안중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입장권 구매나 온라인 쇼핑 결제시스템이 너무 어렵다는 거죠. 그럴 때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도 처음엔 어리바리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익숙해진 겁니다"하고 도전정신을 북돋워드리곤 합니다.
현찰이나 현금카드에 익숙한 어르신에게 키오스크는 분명 괴물 같은 신문물일 겁니다. 한때 키오스크는 노년층이 잘 가지 않는 햄버거 가게 등에 집중돼 별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고속도로휴게소는 물론 소규모 점포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설치되니 주문대 앞에 서기가 두려울 만합니다.
60대 후반의 어느 분은 얼마 전 등산 가서 먹으려고 동네 김밥집에 들어갔다가 당황했던 흑역사를 털어놨습니다. 매장에 말로만 듣던 키오스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거죠.
"헐~ 이놈이 여기까지… 눈앞이 하얘지고 맥아리가 풀려서 눈치보다 그냥 나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느 분은 친구들과 넷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무인단말기로 순대국밥을 주문했는데 수량을 3인분으로 잘못 입력해서 서로 나이 탓만 하며 헛웃음을 지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반면 급변하는 정보통신 사회에 생존하기 위해 '디지털 노마드' (Digital Nomad: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자유롭게 정보통신 세계를 누리는 디지털 리더) 일상을 즐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 지인은 웬만하면 지갑을 집에 두고 외출합니다. 스마트폰에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는 물론 신분증까지 심어뒀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면서 모바일신분증도 함께 신청한 거죠. 핸드폰에 모바일신분증을 저장해두는 절차가 쉽지는 않았지만 반나절 매뉴얼을 뜯어보고 핸드폰과 죽기 살기로 씨름한 결과 쾌재를 불렀습니다. 모바일 신분증을 주변에 보여주면서 '흔들기'를 통해 안개 처리된 개인정보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마다 남다른 희열과 우월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키오스크 주문이나 NFC 결제는 이미 '껌씹기'가 됐습니다.
이분이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무심코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자 매장 직원이 달려와 "대신 주문 도와드릴게요 어르신!"하면서 자신을 '디지털 문맹자'로 취급하는 순간 굴욕감을 느꼈던 겁니다. "디지털 고려장을 당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는 그는 이후 생활 속 디지털 정복에 나섰습니다.
익숙해지면 편리하고 투명한 세계를 지향하는 게 디지털입니다. 초기 약간의 부끄러움만 극복하면 시니어라는 고정관념을 '디지털 노마드'의 품격으로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유성구는 현재 디지털 관련 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강생들의 표정에서 급변하는 디지털 대세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열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프로그램은 구민의 디지털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합니다.
유성구는 올 하반기부터 '디지털전환지원센터'라는 전담기구 설립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디지털전환지원센터 사업은 민선 8기 핵심 공약입니다. 이 센터는 정보통신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은 물론 AI·데이터 처리 관련 미래인재양성 기능과 함께 디지털 전환기를 맞아 구민들에게 필요한 각종 디지털 포용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당장 입지선정, 관련 예산확보 등에 주력한 뒤 임기 내 사업을 완료할 것입니다.
디지털 불평등 해소는 유성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성구 디지털전환지원센터는 국가 차원에서 국민 디지털 불평등 해소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비지원 등 국가 차원의 비상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용래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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