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금강은 알고 있다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금강은 알고 있다

이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승인 2022-08-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비 오는 낙동강에 저녁노을 짙어지면 / 흘려보낸 내 청춘이 눈물 속에 떠오른다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내 심정을 저 강은 알고 있다" =

국민가수라는 수식어조차 부족하여 '엘레지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노래 인생 60년을 맞은 이미자 씨의 히트곡 중 하나인 [저 강은 알고 있다]이다. 이 노래는 1965년에 발표되면서 히트했고 이듬해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노래를 처음으로 듣던 날은 공교롭게 안 좋은 일로 말미암아 기분이 몹시 침잠된 날이었다. 가뜩이나 멜랑콜리(melancholy)하던 차였다. 귀에 쏙쏙 들어와 꽂히는 가사는 바로 나를 비유하는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오열했다.

어쩜 저렇게 내 슬픈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나에게 더욱 적확하게 들어맞자면 '비 오는 낙동강에'가 아니라 '비 오는 금강에'가 적합하지만. 어쨌든 지금도 저녁노을이 짙어지면 이따금 금강으로 흘려보낸 내 청춘이 눈물 속에 떠오르곤 한다.



금강은 충청권을 적시는 강이다. 그렇다. 나는 고향이 충청도다. 그런데 지난 내 청춘은 고통과 슬픔의 이중주였다. 먼저, 어머니 없는 삶을 살았다. 얼굴조차 알 수 없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난 어머니는 나를 심학규의 딸 심청과 다름없는 극난(極難)의 처지로 내몰았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듯한 절망과 외로움은 당연한 다음 수순이었다. 나이가 차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가정환경은 어려웠지만, 공부는 썩 잘했다. 줄곧 1등을 달렸다. "엄마도 없는 놈이 공부 하나는 정말 잘하네!"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없는' 건 비단 이뿐만 아니었다. 진작 알코올에 포로가 된 홀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굶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소년가장으로 나섰다. 갖가지 힘든 생업으로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세상살이가 힘드니까 때론 아무렇게나 일탈도 하고 싶었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대청호를 찾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너르고 푸른 대청호에 아직 꽃망울도 채 피우지 못한 아까운 내 청춘을 가뭇없이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이후 질풍노도(疾風怒濤) 시기에 지금의 천사표 아내를 만났다. 외모와 속정까지 100점 만점이었기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외로웠던 내 마음에도 비로소 환한 등대가 생겼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아이들만큼은 잘 가르치마고 이를 악물었다. 줄탁동시(?啄同時)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둘 다 명문대를 갔고, 직장도 탄탄하다. 아이들이 결혼하여 선물한 손주는 내 삶의 커다란 비타민이다.

얼마 전 아들 내외와 손주도 함께 피서를 다녀왔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가 금강 상류를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술을 한 잔 마셨던 때문이었을까, 불현듯 [저 강은 알고 있다] 노래가 떠올랐다.

- "밤안개 깊어가고 인적노을 사라지면 흘러가는 한세상이 꿈길처럼 애달프다" -

인생은 극구광음(隙駒光陰)이라더니 내 나이도 어느덧 '7학년'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동안의 상처뿐인 가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울러 비록 아무리 어려웠지만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왔던 남다른 내 삶의 이정표에 이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 강, 금강은 알고 있으니까.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홍경석 세창밀시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영경 성남시의회 의원, 초등생 자녀 학폭 사건 사과문 발표
  2. [국감현장]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수사역량 줄고 미제사건 많아" 국감서 지적
  3. [국감현장] 육군 병력 17만 명 감소... 초급간부, 중견간부 처우개선 절실
  4. [국감현장] R&D 삭감 회복 대책·정년 폐지 등 처우 개선… 노벨과학상 기대도
  5. 1천억대 전자담배 기술 발명 배상금 소송 개시
  1. 박안수 육군총장 "北 쓰레기풍선 GPS교란 맞서 최정예 육군 건설에 집중"
  2. [제105회 전국체전]대전·세종·충남선수단, 충청권 체육의 저력 전국에 과시
  3. [WHY이슈현장]둔산지구 개발에 사라진 '삼천동'…"아 삼천(三川)의 대전이여"
  4. 경비노동자 초단기계약 악습 끊고 1년이상 계약 추진... 첫발 내딘 계룡리슈빌학의뜰아파트
  5. 계룡건설, 동반성장지수평가 '우수' 등급 획득

헤드라인 뉴스


세종 갈등현안 일방통행 거듭… 사회적 합의 시스템 찾아야

세종 갈등현안 일방통행 거듭… 사회적 합의 시스템 찾아야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를 둘러싼 논쟁에 딱 어울리는 격언이다. 최민호 세종시장을 비롯한 집행부, 국민의힘 시의원 7명은 정원박람회를 통한 국비 확보로 붐을 조성한 데 이어, 지방·국가정원 등록으로 나아가겠다는 입장을 강변해왔다. 닭이 우선이란 뜻이고, 순천시가 걸어온 길로 통한다. 반면 임채성 의장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13명 중 12명은 지방정원(지자체 자체 지정) 또는 국가정원(정부 승인) 등록 흐름을 만든 뒤 '국제 행사'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는 반론으로 맞서고 있다..

최민호 시장, 10월 17일 시정 복귀...플랜 B 찾는다
최민호 시장, 10월 17일 시정 복귀...플랜 B 찾는다

최민호 세종시장이 10월 17일 시정 복귀와 함께 플랜 B 실행을 예고했다. 플랜 B는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란 플랜 A(원안)이 사실상 무산 상황에 놓이면서, 다시 찾아야 할 차선책을 의미한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미래 정원도시 조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10월 11일 오후 4시경 단식 중단을 선언하고, NK세종병원에서 요양 치료를 받은 뒤 6일 만의 복귀 메시지다. 공직사회와 지역 언론, 시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배경이다. 최..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지방 주택시장 위협하나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지방 주택시장 위협하나

정부가 최근 무주택 서민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디딤돌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하면서, 전용 85㎡ 이하·평가액 5억 원 미만 주택이 많은 지방 부동산 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7일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와 HUG는 시중은행에 디딤돌 대출 취급 제한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신한·하나은행 등은 21일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고, 이에 앞서 KB국민은행은 14일부터 이를 반영한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디딤돌 대출은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 원 이하인 경우 최대 5억 원 주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차난 가중시키는 방치 차량 주차난 가중시키는 방치 차량

  • 대전 유성구, 겨울철 대비 도로 안전 캠페인 실시 대전 유성구, 겨울철 대비 도로 안전 캠페인 실시

  •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카이스트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 전기차 화재…‘이렇게 탈출 하세요’ 전기차 화재…‘이렇게 탈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