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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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2-08-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는 평생 헤아려도 어쩌지 못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일들에 파묻혀 살고 있다.

허나 그 중 오랜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기쁜 일들을 말해 보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살아온 세월의 그림자가 숱한 그늘에 묻혀서 희비로 수놓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지난 날 웃고 울었던 일 중에서 잊을 수 없는, 기쁨에 관한 걸 말해보라면 다음 세 가지를 들겠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녀 출산으로 엄마 아빠가 됐을 때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기뻐할 일이기에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기뻤던 일 중 우선순위 첫 번째는 중학교 입시 결과가 장학생으로 선벌된 것이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으로 진학은 생각도 못하고 2년 동안 지게 지고 일 하다가 단식투쟁으로 중학교 가라는 허락을 받았다. 천우신조(天佑神助)였는지 운 좋게도 입시 결과는 장학생 합격이었다.

합격자를 발표하던 날 교정에 울려 퍼지던 <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 >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경쾌한 음악은 나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느낌이었다. 확성기에서 울려 퍼졌던 경음악은 가볍고 동적인 감동의 소리였기에 수십 년이 지난 세월이지만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두 번째는 아들의 서울대 합격 소식에, 하도 기뻐 웃음 반 울음 반으로 아내와 같이 눈물을 흘리던 일이며, 세 번째는 교직 말년에 'TJB교육대상' 대상을 받고 방송국에서 기쁨의 눈물을 주체 못하며 수상소감을 말하던 때의 일이다. 이 모두가 내 평생의 삶을 장식하는 기쁨과 환희였으리라.

나는 최근에 기뻐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내 작은 끄적거림 수필 < 선생님을 가르치는 제자 > 에 나오는 자랑스러운 주인공(정지식 제자)의 맏딸이 중증교사 임용고사에서 당당하게 합격이 됐기 때문이다. 역사교육과 선생님이 된 것이다. 제자의 딸만 해도 남인데, 남의 잘된 일을 가지고 왜 그리 제일처럼 좋아하고 법석을 떠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소천한 지 11년째 된다. 나는 애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사궁지수(四窮之首)의 한과 고독으로 살아왔다. 아마도 제삼자가 보기에 혼자 사는 삶 자체가 걱정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고 3때 담임했던 제자 덕분에 격동의 시간을 잘 견뎌내고 지금껏 잘 살고 있다.

우리 집엔 제자(정지식) 부부의 온혈 가슴의 훈기가 늘 풍기고 있다. 날짜가 바뀌고,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자 내외의 정성과 사랑이 따라와 숨 쉬고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늙은이라 해서 그런지, 가을 되면 농사지은 햅쌀이며, 겨울 되면 김장을 해서 보내온다.

수시로 바리바리 싸인 반찬 그릇 박스가 택배로 배달되고, 설 명절, 추석 명절, 생일까지 챙겨 주는 상황이니 미안의 극치에서 살고 있다. 제자 부부의 따듯한 정성과 사랑 속에 빠져 사는 느낌이다.

게다 대천에 전원주택까지 지어 줄 테니 게 와서 살라 하는 제자이니 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3 때 담임이라고는 하지만 근 40년이 지난 세월 속에 이처럼 하는 제자가 세상 어디 또 있을까!

천사가 따로 없다. 제자 부부가 지상의 천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슴이 가장 따뜻한 자격증 있는 천사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바르고도 의롭게, 따뜻한 가슴 배려심으로 약자를 자기 가족 이상으로 어루만지는 부부니, 아마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천연기념물로 사는 분들이라 하겠다.

내 이런 관계 속에 살고 있으니, 내 진정 사람의 가슴을 가진 존재라면 어찌 예사로운 무감각으로 살 수 있으랴!

나는 남의 신세를 진다든지 은혜를 입으면 그대로 있는 성격이 못 된다. 그런 까닭에 제자 가정이나 그 가족들을 위해서 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매일새벽 4시에 알람(alarm) 시계 소리에 일어나 기도를 해 주고 있다. 내 전직이 평생 교사였으니까 가르치는 일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제자 맏딸을 가르치는 것으로 다소나마 마음의 빚진 것을 갚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자의 맏딸이 논산 쌘뽈여고 2학년 말기부터 국어학습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논산서 기숙사 생활하는 학생을 한 달에 한 번씩 대천 자기집에 오라 해서 국어 심화학습을 해 주었다. 아침 일찍 승용차로 대전을 출발하여 대천에 가서 1년을 그렇게 했다.

그런 제자의 맏딸이 원광대학교 4년간 특수장학생으로 졸업하고, 그 어려운 중등교사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자가 됐으니 이 어찌 아니 기쁠 수 있으랴!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마음 벅찬 기쁜 일에, 몇 마디 말이나 축하 전화의 의례적인 인사만으로는 양이 찰 거 같지 않았다.

마침 2월 달력을 쳐다보니 제자 부인 생일로 표시된 날짜가 보이기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임용고사 합격축하, 어머니는 생일축하 차 저녁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하여 제자 부인 생일 이틀 전 날짜를 잡아 가족 전체를 초대하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초대 장소는 '맛보고'라는 한정식 집, 참석자는 대천서 온 제자 가족 -제자 부부 , 제자 딸 자매 - 그리고 나, 식탁 위엔 생일 케이크 하나, 식탁 밑에는 대기하고 있는 봉투 한 장, - 교사 첫 부임 날 정장 옷 한 벌 사 입고, 첫 출근하라는 작은 정성 - 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붓한 저녁 식탁 둘레에는 하나, 거기에 넷을 더한 사람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이, 꿈틀거리며 생일 케이크 촛불 빛과 함께 온 방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오붓한 그 자리는 천만금으로도 안 되는, 서로의 감사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이 무르녹고 있었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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