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미룸갤러리 대표) |
'청춘학교'는 한글을 모르는 분들부터 대입 검정고시까지 다양한 반이 있다. 기역, 니은, 디귿으로 시작하는 한글반, 가나다라를 읽고 쓰는 반에 이어 단어를 열심히 읽고 쓰는 반이 있고, 그 반을 건너가면 문장 반이 기다린다. 이 반이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과정이 하나 더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라 할 수 있는 초등검정고시반이다.
아침 9시 시작해서 50분 수업 세 번이 끝나면 점심시간이 된다. 한글 기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님들은 그림에 가까운 글씨를 쓴다. 글을 쓴다는 말보다는 그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글씨가 반듯하다. 한 반에 6~7명 정도, 대부분 연세 지긋한 분들이 학생인데 탄성이 터지듯이 "재밌다!"라는 말이 교실 밖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아직도 배운다는 것에 대해 크게 힘을 쏟지 않고 사는데, 이분들은 세 시간 동안 하는 공부에 온 정성을 쏟는다. 읽고 쓰고를 반복하고 스스로 감탄사를 내고는 하는데 공부라는 단어로 해석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한번은 글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운전면허를 따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차를 몰고 가고 싶다"는 대답과 다른 하나는 "노래방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왔다.
이쯤 되면 이분들에게 배운다는 것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 때문에 배우지 못했다는 노골적인 적대감도 이제 세월의 옷을 입었다. 못 배워 맺힌 마음이 여러 시간을 건너 여기 청춘학교에 왔다. 나이 먹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를 읽고 쓰며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부모가 가장 듣기 좋다고 말한 소리가 있다고 앞에서 말했는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새끼들을 그러한 공간에 넣지 못한 마음 또한 어땠을지 조금이나 짐작해 본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을 때 밭일을 하거나 동생들을 돌보며 울었다는 이들의 말을 들었을 때는 배운다는 일이 인간의 마음에 이렇게 크게 남는구나 싶었다.
예술인복지재단과 대전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청춘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영화의 한 장면이나 드라마의 대사 정도로만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히는 이야기들이었을 터였다. 저마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분들이 모여 오전과 오후 한글을 읽고,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청춘학교에 모였다. 한여름 열기는 여기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장마가 끝이 났다. 이제 열대야만 남았다. 나도 이곳에서 10월 말이면 떠난다. 내가 오지 않아도 여전히 청춘학교에 다니는 학생님들은 어제 본 모습, 오늘 본 모습이 내일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청춘학교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잠시 커피 한 잔 나눌 공간도 없고, 자식 자랑할 쉼 공간은 사치다. 한발 더 나아가 교사들이 학생님들과 상담할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과욕이라 할 만하다.
청춘학교에는 열과 성의를 다하는 교사들, 그 열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증폭시키는 학생님들이 있다. 배우는 열의로 본다면 아흔아홉 칸 집이 부족할 정도의 마음 부자들인데, 그런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줄 현실의 공간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늦게나마 배워야 할 이유도 생겼고 같은 마음으로 온 친구들이 글동무들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교과 과목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과 연계된 시간도 만들어 채워져 있다.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이다. 단지 이런 마음을 풀어놓고 펼칠 수 있는 교실이 없다고 말하려고 하니 나 자신이 딱해진다. 내 생각과 달리 학생님들의 마음은 한글을 깨우치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 자신들의 삶의 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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