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획은 숨겨진 대전의 명소를 찾기 위해서다. 대청호부터 계족산, 한밭수목원 등 대전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는 많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장소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소소하게 이름난 지역의 명소를 찾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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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문 앞에 핀 배롱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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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정문 전경. 배롱나무가 아주 탐스럽게 아름답게 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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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풍경. 작은 다리를 건너면 건물 위로 오르는 길이 있고, 그 옆에도 바로 배롱나무가 있다. |
어디로 떠날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여름 아! 보라색, 혹은 분홍색으로 피는 배롱나무'가 떠올랐다. 그리고 100년 된 배롱나무가 중구 무수동 여경암에 있다는 글을 보았고, 얼마 전 가장 아름답게 개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유회당과 '여경암 500m 푯말이 있는 중구 무수동에 도착했다.
▲여경암(중구 운남로 85번길 54-153)=여름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의 낙엽 소교목이다. 7월부터 늦가을까지 꽃이 피는데, 100일 동안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 나무라고도 한다.
중구 무수동 마을에 도착해 여경암으로 오르기 전 유회당부터 둘러봤다. 유회당에 들어가기도 전에 분홍색 꽃망울을 틔운 배롱나무가 보였다. 아, 제때 찾아 왔구나 기쁜 마음에 더위도 잠시 잊힌 듯 했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권이진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이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곳으로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와 권이진 선생의 문집이 보관된 장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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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안에 핀 배롱나무도 어느덧 절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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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초록, 배롱나무 완벽한 삼박자가 보여주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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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묻힌 배롱나무도 보인다. |
유회당 배롱나무는 문밖과 안쪽에 여러 그루 자라고 있는데, 나무는 심어진 지 오래 되었는지 크고 웅장했다. 배롱나무의 꽃은 수술이 여러 개 달린 것이 특징인데, 가까이서 보기보다 멀리서 볼 때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다. 유회당 배롱나무는 화려하게 피었고 절정에서 이제 낙화로 가는 단계였다. 그럼에도 취재가 수월하게 풀려가자 지는 꽃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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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500m라 표시 되어 있다. 그러나 체감은 50km였다고 하면 믿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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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암으로 오르다보면 유회당의 뒷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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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구간이다. 보이는가 저 가파른 경사 말이다. |
이제 여경암으로 오를 차례였다. 유회당에서 나와 500m만 가면 곧… 금방… 여경암이라고 했는데 겨우 5분 오른 산길은 시작부터 그야말로 지옥의 시작이었다. 한낮 땡볕에 땀은 미친 듯 쏟아져 내리고, 산속 날벌레들이 쉴새없이 달려들어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사진 산길은 너무나 가팔라서 체력이 약한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기를 수십 번. 500m가 이렇게 멀었던가, 아니 왜 아직도 여경암이 보이지 않을까… 포기할까… 다른 배롱나무를 찾으면 되지라며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러나 쉽게 포기 할 수 없었다. 대략 중반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여기서 포기하면 수확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절에 가는 길이다. 고생 끝에 분명 부처님이 복을 주실거다. 100년 된 배롱나무가 곧 내 눈앞에 나타난다' 등등 나 홀로 주문을 외우며 가뿐 호흡을 다독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길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 여경암을 오르는 누군가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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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헛웃음이 나오게 했던 글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
여경암은 보문산에 있는 조계종 절이다. 유형문화재 제18호 거업제와 산신당이 있는 곳이고, 스님 한 분이 지키는 소박하고 작은 절이라고 했다. 여경암을 오르는 길이 워낙 가파른 탓일까, 곳곳에 부처의 말씀이 부착돼 있다. 풍타지죽낭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차죽피죽화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 대로', 만사불여오심죽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글귀가 나의 모습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갈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을 때 저 멀리 여경암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100년 된 배롱나무야 내가 왔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쥐어짜며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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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여경암이 보이고는 있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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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이 거진 지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경암을 배경으로 얼마나 아름답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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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한 번 더. |
아! 그런데, 이럴 수가. 고진감래를 믿었는데, 쓴맛 뒤에 반드시 단맛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여경암 배롱나무는 꽃이 80% 이상은 진 상태였다. 나무 가까이 가야만 그나마 남아 있는 꽃망울이 보였다. 만약 만개한 꽃이 핀 배롱나무였다면 힘들게 올라온 피로감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은 위용이었다. 아쉽지만 자연의 섭리에서 늦은 자에게 더이상 어떤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문산 품에 안긴 고즈넉한 여경암을 새기며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대전 도심을 곳곳을 돌아 다녀보니 배롱나무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경암의 배롱나무에 비하면 아직은 애송이 나무에 불과했지만. 내년 여름 체력은 다진 후 다시 여경암을 찾아가 볼까.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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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하산하던 중, 천천히 가라는 푯말. 산 길로 향하면 시루봉과 보문사지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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