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팀장 |
대전에 살면 정치인들의 ‘유잼도시’ 타령이 매년 잊지도 않고 찾아온다. 온라인에서 대전을 빵집으로 놀리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었고 대전 친구가 "대전은 교통도 편리하고 자연재해도 별로 없어서 살기 좋은데 조금 심심한 재미없는 도시야"라고 말하는 것도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내가 다니는 학교는 매번 꼴통 학교라고 말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 꼴통이라고 하면 화내며 "욕해도 내가 욕한다"고 성질을 내는 것처럼 재미로 노잼이라 하던 것을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대전이 노잼도시'라고 말해버린다면 기분이 나쁜 것도 사실이다.
사실 타지 출신인 필자 입장에서 대전은 대전 나름의 재미가 있는 도시다. 식문화도 타지에서 온 사람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메뉴가 많다. 닭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냉면부터 돼지고기 없는 두부두루치기, 바닷가에서는 못 먹어본 민물새우탕, 어디를 가도 중간 이상을 하는 칼국수와 군데군데 줄지어 있는 콩나물밥 가게에서는 지역적 특색을 볼 수 있다. 현지인도 타지인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다.
최근 젊은 사람들의 관광 트렌드가 음식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없어서 해산물만큼의 임팩트가 없을 뿐이다. 한밭수목원을 비롯한 도시공원과 식장산, 보문산 등도 잘 정비돼 있다고 생각한다.
식문화는 그 도시의 관광 자원을 생각할 때 고려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만 단기간에 형성할 수 없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연경관은 보존할 때 그 가치가 있고, 도시의 스토리는 그 도시에 사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대도시는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 비해서는 자연경관에 밀리고 내륙지역은 바닷가에 비해 식재료나 놀거리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고대시대처럼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그 흙으로 산을 만드는 대공사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관광지가 아닌 광역도시가 유명 관광지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그런 입장에서 현대 도시의 중요한 관광 자원 중 하나는 문화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전은 전국적으로 규모 대비 문화예술 활동이 침체된 곳이다. 2021년 발간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에 따르면 대전은 2020년 시각예술 횟수가 96건으로 17개 시도 중 꼴등이다. 부산, 대구에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고 광주에 비해서도 절반에 못 미친다. 인구 10만 명당 문화예술 활동 건수도 양악을 제외하면 최하위권이다. 문화시설의 운영 주체별 공연 건수에서는 공공주체는 전국 10위권인데 비해 민간영역은 4위다. 공공이 손 놓고 있는 사이 그나마 민간에서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 규모를 고려해 계산한다면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노잼이 싫은 정치인이라면 문화예술에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정치인들이 유잼도시 타령하며 450m 보문산에 150m 전망대를 만들겠다고 한다거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거대 조형물을 만들겠다고 하거나 대전역 앞에 4차 산업혁명 도시이자 과학도시를 상징하는 깡통 로봇을 세우겠다고 할 때, "사실 노잼도시라는 말은 노잼 정치인들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 김재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조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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