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엽관제 민주주의의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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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엽관제 민주주의의 성공 조건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8-01 08:22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손종학 교수
손종학 교수
미국에 변호사 출신의 체스터 앨런 아서 대통령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재직 중에 암살당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경우가 4번 있는데, 링컨 대통령의 사망으로 앤드루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일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린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사실은 우리네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서 대통령도 당시 대통령이던 가필드가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암살당한 관계로 졸지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러기에 당시 미국 국민은 아서 대통령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적 뿌리가 부패 정치의 상징적 정치인이었던 로스코 콩클린 계파에 속했고 가필드와 콩클린의 정치적 연대에 따라 졸지에 부통령이 되었던 것이기에 그에게 정치적 역량 발휘를 통한 위대한 성취를 기대할 형편이 전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가 횡행하던 사회이었다. 즉 선거에서 이긴 쪽이 모든 관직을 독차지하던 엽관제(The Spoils System)가 뿌리 깊게 자리 잡던 시절이어서 능력과 자질과 관계없이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관직을 부여받는 문제점이 속출했다. 엽관제란 말 자체가 사냥을 통해 얻은 동물을 전리품으로 다 가져간다는 뜻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듯이 선거를 일종의 사냥으로 보고 관직을 사냥 수확물로 봤던 것이다. 그 결과 선거 승리에의 공적과 관계없이 능력과 자질만 있다면 공직에 등용하는 성적제가 무시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보스인 콩클린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해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콩클린 사람들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초강수를 두었다. 또 여기서 더 나아가 공직 임용방식의 대전환을 이룬 펜들턴법(Pendleton Civil Service Reform Act)을 제정·시행했다. 펜들턴법은 엽관제와 매관매직 시스템을 타파하고 공개시험을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는 법으로서 일종의 우리네 행정고시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법률이다. 이 법을 통해 미국은 엽관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일부나마 능력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법의 시행으로 아서 대통령은 동지를 잃고 수많은 사람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는 "나는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개인 체스터 아서와 미국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엽관제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니 실은 꼭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은 세력이 관직을 맡아 원팀 정신으로 힘을 합쳐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선거 민주주의의 요체이기에 어찌 보면 엽관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가장 들어맞는 관직 부여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엽관제를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 약점도 존재한다. 즉 전문성과 자질 결여의 인사들이 대거 관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맹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엽관제가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첫째는 엽관제는 능력을 전제로 한 엽관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선거 승리에 기여한 집단이 관직을 맡되, 능력과 자질을 갖춘 기여자만이 관직을 맡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능력과 자질 부족의 소위 선거꾼들이 공직에 진출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그다지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제돼야 할 점은 바로 직업공무원제의 확립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기본적으로 관료들은 전문성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 상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테크노크라트 정신이 몸에 배어 있기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집권세력의 정치 철학을 잘 구현하려는 자세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점을 비판해 직업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냉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는 직업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불법과 위법이 아닌 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세력의 국정 방향에 부합되게 행정을 하려는 자세야말로 국민의 공복인 직업공무원의 기본자세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직업공무원들이 안정적으로 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 국가 중대사를 처리한다면 엽관제를 통해 공직을 맡은 소위 정무직 공직자의 한계를 잘 보완할 수 있다.

역대 어느 정권을 가리지 않고 선거가 끝나면 논공행상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기계적으로 나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많은 정무직 공무원들이 선거에서의 기여뿐만 아니라 수임한 공직을 잘 감당할만한 능력과 자질, 거기에 드높은 경륜까지 갖춘 자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이 국민 사이에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엽관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마냥 고울 수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제들만 잘 갖춘다면 엽관제도 내재적 폐해를 극복하고 얼마든지 순기능을 발휘해 책임정치 구현을 통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제 중앙정부이든 막 선거를 마친 지방정부이든 모두 출발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취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엽관제를 통한 선거 기여자의 관직 진출을 무조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과연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기여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혜안이 언론과 국민에게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무차별적 트집만 잡는다면,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설 땅이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위정자도 잘 훈련된 직업 공무원들의 업무수행 능력과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존중해 국정 수행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줘야 한다.

지금은 국민과 언론, 위정자 모두의 성숙한 자세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다. 능력 기반 엽관제와 직업공무원제의 존중 정신을 조화시키는 지혜만 제대로 갖춘다면 엽관제 민주주의도 성공할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성공을 기대해 본다.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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