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알박기와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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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호테 世窓密視] 알박기와 자존심

꽃은 필 때가 아름다워야 하지만

  • 승인 2022-07-31 10:40
  • 수정 2022-07-31 10:4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알박기 인사' 문제가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대서 나온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알박기'는 대단히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재개발 예정 지역의 알짜배기 땅을 미리 조금 사 놓고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땅값을 많이 불러 개발을 방해한다. 그리곤 결국엔 개발업자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형적 투기꾼임을 드러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기업 낙하산과 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이른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는 과거 어떤 정권보다도 많았다.

상식이겠지만 정권이 바뀌면 자기 사람으로 인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이 눈치도 없이(?) 현 정권의 요직에서 요지부동인 모습은 보기에도 거북하다.



예전에 나는 모 언론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했다. 오랫동안 모셨던 지사장님께서 사직하던 날, 나도 따라서 사표를 냈다. 딱히 의도는 없었다. 단지 왠지 그래야만 남자로써 의리를 지키는 듯싶어서 그리했다. 그것은 또한 나의 남다른 자존심(自尊心)이었다.

마치 누가 말했다는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의 복제품처럼 그렇게. 여하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이 여전히 요직을 꿰차고 마치 '알박기'처럼 버티고 있는 것은 나 같은 장삼이사가 봐도 웃프('웃기고도 슬프다' 라는 뜻)다.

환경부 산하 기관장 사퇴를 압박했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면서 이번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알아서 물러났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이젠 누구도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에게 "나가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패러다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조건 버티기'가 이제 새로운 트렌드가 되면서 이는 또한 '새로운 알박기' 관행으로 정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자리가 좋을까?

문제는 그렇게 알박기로 기관장을 하고 있는 부처(部處)는 자칫 현 정부로부터 배타적 입장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군(主君)이 바뀌면 신하들도 일제히 그 자리를 내놓는 게 상식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우리의 정치도 미국처럼 플럼북(PlumBook) 형태를 조속히 모방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책자 겉표지 색깔이 자두(plum)색이라 해서 붙여진 '플럼북'에는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자리 9000개가 나열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왕조에서 임사홍(任士洪)은 간흉(奸凶:간사하고 흉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주모자로 알려진 임사홍은 두 아들과 함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로서 왕실과 인연을 맺으며 세조에서 연산군까지 정치적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난 후 처형을 당했고,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권력에 탐닉한 그는 사후에도 연산군의 악행과 패륜적인 행동을 부추긴 간신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또 다른 '부정적 알박기'의 종말을 보는 듯하여 굳이 호출했다. 꽃은 필 때가 아름다워야 하지만 사람은 질 때가 아름다워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은 정상에서 내려갈 때 역시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홍경석 세창밀시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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