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백이숙제까지 언급하였다. 다시 한 번 창부타령 가사를 보자.
"날 찾네, 나를 찾네, 그 누구라 날 찾나, 기산(箕山) 영수(潁水) 별건곤(別乾坤)에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날 찾나, 백화심처일승귀(百花深處一僧歸)라 춘풍석교화림중(春風石橋花林中)에 성진화상(性眞和尙)이 날 찾나, 청산기주(靑山冀洲) 백로탄(白鷺灘)에 여동빈(呂洞賓)이가 날 찾나, 도화유수무릉(桃花流水武陵) 가자 어주속객(魚舟屬客)이 날 찾나, 수양산(首陽山)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사리 캐자 날 찾나, 부춘산(富春山) 엄자릉(嚴子陵)이 간의대부(諫議大夫) 마다하고 칠리동강일사풍(七里桐江日斜風)에 함께 가자 날 찾나, 기경선자(騎鯨仙子) 이태백(李太白)이 풍월(風月)짓자 날 찾나, 상산사호(商山四皓) 네 노인(老人)이 바둑 두자 날 찾나, 기주(嗜酒)하던 유영(劉怜)이가 동배주(同盃酒)하자고 날 찾나, 칠석은하(七夕銀河) 견우직녀(牽牛織女) 한포(漢浦)로 지나다가 함께 가자 날 찾나, 차산중운심(此山中雲深)한데 부지처(不知處) 오신 손님 날 찾을 리 없건마는 그 누구라 날 찾나."
부춘산(富春山,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에 있는 산)은 엄자릉(嚴子陵)이 은둔하던 곳이다. 엄자릉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와 친밀한 관계였다. 친구라고도 하고 은사라고도 한다. 광무제가 황제에 등극하자 변성명하고 숨어버렸다. 광무제가 간곡히 청하여 어렵게 만난다.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에 은거하여 농사짓고 낚시질로 생을 마쳤다. 그가 살던 곳은 몹시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7리나 곱게 뻗어있는 물가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그 곳으로 가자고 엄자릉이 찾는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 중 한 사람이 이태백 아닌가? 시선으로 불리는 그의 죽음에 대한 전설이 있다. 달밤에 비단 도포 입고 낚싯배에 앉아 술 마시다 강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달을 보았다. 술 취해 그 달을 잡으려다,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물고기 밥이 되지 않고 고래 등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그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 기경선자이다. 그런 이태백이 풍월을 짓자 한다.
상산사호(商山四皓)는 상산(商山)에 사는 머리 흰 네 노인,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각리선생(角里先生), 하황공(夏黃公)을 이른다. 개별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나, 단편적인 그들의 기행은 많이 전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포악한 정치로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꿈꾸던 요순시대가 불가함을 알고 숨어 산다. 상산은 섬서성 상현 동쪽에 있는 산이다. 은거(隱居)하며, 약초 캐고 바둑 두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들이 영지버섯을 따며 불렀다는 자지가(紫芝歌)에 의하면, 걱정 많은 고관대작보다 빈천해도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희구하였다.
술 즐기는(嗜酒) 유영(劉怜)이가 함께 술 마시자(同盃酒) 부르느냐고 묻는다. 유영은 은둔의 대명사 죽림칠현(竹林七賢)중 한 사람이다. 죽림칠현은 위나라 사마씨 일족이 국정을 장악, 전횡을 일삼자 대나무 숲에 은둔하여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소극적 저항을 한 사람들이다. 유영은 북송 시기 새롭게 대두한 시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한 만사(慢詞)를 창작하여 송사(宋詞)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매우 대중적인 작가였다.
칠석은하는 견우와 직녀 설화의 무대이다.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승된다. 칠석은 7월 7일이다. 목동 견우와 베짜는 아가씨 직녀가 사랑에 빠져 하라는 일을 등한시 하자, 옥황상제가 은하수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견우직녀(牽牛織女) 둘의 상사지정을 안타깝게 여긴 까치와 까마귀가 은하수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만나게 해주었다. 그때가 칠석날 밤이다. 이날 민가에서는 바느질 하고 문장 지으며, 한여름 휴식을 취한다. 술과 안주를 장만하여 풍물 굿으로 마을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고샅길도 정리하고 우물 청소도 하며, 우물 고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칠석제는 흰무리를 빚어 간소하고 정결하게 지낸다. 사랑의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부러운 일이요, 환영할 일이다.
노래에서는 포구(漢浦)에서 만나 배를 타고 갈 모양이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골짜기 마다 구름이 가득(此山中雲深)하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不知處) 신비로운 풍광이 펼쳐진 곳으로 함께 가자 누군가 찾아온 것이다.
민요는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작사가나 작곡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놀랍기만 하다. 모두 주관이 뚜렷하고 탈속한 사람이다. 이상향을 가지고 있고, 그를 지키기 위해 신명을 바친다. 사랑도 이상의 하나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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