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함께한 시간, 함께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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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함께한 시간, 함께할 시간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22-07-26 09:53
  • 신문게재 2022-07-27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동해, 적당히 흐릿한 아침 바다의 선선한 바람은 폭염과 어수선한 국내외 뉴스로 인해 눅눅하기만 했던 마음을 한층 가볍게 하였다. 영랑호반 아침 산책에 이어 남애항, 주문진, 연곡을 거치는 동안 하늘은 하늘답게, 바다는 바다답게 드러내는 한여름의 찬란함에 감탄하다 보니 길은 어느새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에 이르렀다. 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드라마가 떠오른다.

공원 중심에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열며 한반도의 정동쪽에 세웠다는 대형 모래시계가 있고, 각기 다른 고운 색깔로 칠해진 열차는 시간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정동진역이 90년대 중반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의 촬영지이고 해돋이 명소로는 알았지만 훌쩍 나이 들어 찾아오니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따가운 여름 볕을 피해 시간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기차 차량으로 이어지는 박물관에서는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를 비롯해 세슘원자시계까지 시계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시계들, 고가의 시계들, 그리고 특별한 추억을 지닌 시계들을 실물로 보여주기도 하고 영상을 통해 설명하기도 하였다. 박물관을 관람하며 인류가 정확한 시간을 재기 위해 만든 대단한 작품들에 놀랐지만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함께한 시간, 함께할 시간'이라는 마지막 공간의 타이틀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7번 국도, 동해대로를 따라 동해안을 한 차례 훑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 배낭 꾸려 짊어지고 걷다가 쉬다가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도 타면서 여행했던 길을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변수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직원들이 모두 함께 쉬는 지정연차를 앞두고 서로의 휴가 계획을 나누다가 필자가 7번 국도 여행을 말하자 후배 교수가 함께할 의사를 밝혔다.



이유인즉슨 20년 이상을 함께 일했는데 여행 한번 함께 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사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개성이 있고, 취향도 다른 편이어서 학생들과 더불어 세미나를 위한 여행을 한 기억은 있지만 휴가를 함께 보내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동행 의사를 듣는 순간 여러 날을 긴밀하게 지내야 하는데 서로 편안하게 다닐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함께 여행한 적이 없다는 말에 끌려 함께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여름 성수기인데다 한 장소에 머무는 일정이 아니라 매일 이동해야 하는 여정이므로 미리 동선을 계산해 숙소를 예약하고, 차량 점검이나 보험 등 이것저것 나누어 담당하기로 하였고, 별다른 이견이나 갈등 없이 준비를 마치고 떠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것에 어려워하지 않고, 계획은 있으나 상황에 따라 변해도 아쉬워하지 않으며, 느긋한 일정에 더 좋아하고, 너무 많이 먹지는 않지만 다양하게 먹어보려고 노력하는 등 서로 잘 맞았다.

원래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몰랐는지, 아니면 함께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맞추어졌는지 평온한 여행이 되고 있다. 아마도 함께한 많은 시간이 만들어낸 화합일 것이다. 같은 직장에서 오래도록 함께 일했다는 인연을, 그 시간을 귀하게 생각했기에 함께할 또 다른 시간을 마음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박물관 마지막 공간에서 카툰 작가는 신문 한 꼭지 보기에도 모자라고, 노래 한 곡도 다 듣지 못하고, 커피 한 잔 마시기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기에는 충분한 시간'1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야겠다. 시간은 무한하다지만 인간이 유한하니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고 나누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 오래도록 함께한 사람들과 함께할 좋은 시간을 생각해보아야겠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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