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당신 가까이

  • 오피니언
  • D-MZ:청년칼럼

[D-MZ] 당신 가까이

서한나 '보슈' 대표

  • 승인 2022-07-25 08:44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서한나 사진
서한나 대표
중도일보에 MZ세대 필진들이 모였다. 'D-MZ'(Daejeon-MZ generation)는 변혁의 최전방에 서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전하기 위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나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고 나와 국밥을 먹다가 "그래서 그 주인공이 고모할머니의 복제인간인 거죠?"라고 친구가 물었을 때, 고모할머니가 나와요? 하고 묻는 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내게 서사는 어려운 것이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에 관해 듣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옥인 것은 자신의 경험을 쥐고 사건과 사람을 재단하기 때문일 텐데, 이야기는 정반대의 작용을 인간 안에서 해낸다. 인간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첫 단계는 이입이다. 이입하지 못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고, 이입이 시작되면 등장인물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가 끝난 뒤 우리는 조금 다른 인간이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필 굿>을 재미있게 보고 주인공인 메이에게 깊이 이입해 한 에피소드가 끝나고 팔에 돋은 닭살을 쓸어본 사람이 길거리에 지나가는 레즈비언 커플을 보고 속으로 저주를 퍼붓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애초에 호모포비아가 <필 굿>을 재생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한편 그것을 보고 레즈비언은 유머러스하고 예술적이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다가 급기야 내게도 레즈비언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태도 또한 스테레오타입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그다지 좋은 태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레즈비언은 이미 당신의 동창, 마트 계산대 뒤의 이웃이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 레즈비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가 등장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우영우의 이야기가 매주 화제에 오르는 현상은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자폐인에 대한 천재적인 이미지, 그것에 호기심을 보내는 시선 또한 자폐인의 삶을 어렵게 한다. 게이 출연자들이 연애 상대를 물색하는 프로그램으로 릴리즈 전부터 '하트시그널 게이 편'으로 주목받았던 <남의 연애>가 방영되는 지금, 세상에 필요한 태도는 이런 것이다. 이입 없이 대상화하는 것을 멈추기. 현실에 존재하는 레즈비언과 게이와 자폐인에 대하여 유일하게 지닌 상을 거두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애 예능은 죄다 헤테로 편이네’라고 생각하기.

우리가 이러한 이슈 앞에서 분통을 터뜨린 경험이 있다면, 저스틴 토시와 브랜던 웜키의 발견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로스차일드와 키퍼는 사람들이 도덕적 범죄에 공모한다고 느낄 때 죄책감을 덜어 좋은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타인을 향한 분노와 처벌하려는 태도로 표출한다. 일단 분노를 표출하면 자신을 다시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104) '그랜드스탠딩 : 도덕적허세는 어떻게 올바름을 오용하는가' 저스틴 토시, 브랜던 웜키 지음, 김미덕 옮김, 오월의 봄, 2022

위악적인 사람보다 위선적인 사람이 낫다고 여겨왔지만, 어떤 도덕적 분노는 방어적이라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답답해하는 이에게 내밀 수 있는 것은 좋은 이야기다. 인간은 타인에게 이입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서한나 '보슈' 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