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변호사 늘어도 무변촌 그대로 ②로스쿨 직후 떠나는 사법 인재
1961년 10월 대전 선화동 대전지법 구내에 대전변호사회관을 처음 마련했다는 당시 중도일보 보도.변호사회관은 이후 법원 내 공실을 사용했다가 선환동 현대빌딩을 거쳐 지금 둔산동 법원 앞 독립청사를 사용 중이다. |
지난 20일 창립 74주년을 맞은 대전지방변호사회는 이렇다 할 기념식 없이 이날을 보냈다. 창립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다보니 회원 변호사들도 이날이 인권옹호와 사법정의 실현을 목표로 헌법 제정 나흘 뒤에 우리지역 변호사회가 출범한 사실을 상당수 모르고 있다.
특히, 충청권에서 판사와 변호사 등의 법률가가 활약한 지 127년이 되었을 정도로 뿌리 깊으나 이를 돌아보고 계승하는 움직임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1909년 경남 하동 출신의 이진우 변호사가 공주지방재판소 소속으로 등록한 것이 첫 단추가 되어, 1936년 재야법조인 홍긍식·임창수·이관수 변호사 등이 공주변호사회를 창립했으며,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헌법이 공시된 나흘 뒤에 대전지방변호사회가 태어났다. 이때 초대 회장을 맡은 홍긍식 변호사는 1927년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이었던 제2차 유림단사건의 변호인을 맡았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사 자료집에서 찾을 수 있을 뿐 지역 법조계에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또 1970년 8월 20일 대전지법 오병선 판사가 야간통행금지 등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31명에 대해 헌법을 준용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시작된 즉결심판의 절차법 10조 위헌 문제는 바로 다음날 대전지법 최휴섭 판사가 자백에 의한 즉결심판 23명에게 또다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1971년 반공법 사건에 자주 무죄를 선고한 판사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해 사법권을 침해한 사법파동 때 대법원장을 찾아가 사법부 독립을 촉구하고, 성전환수술로 인한 호적상 성별을 정정하는 신청을 허가한 판결도 지역 출신 법조인과 지역법원이 주도했다.
충청권이 사법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사이 지역 로스쿨 학생들은 보고 배울 지역 내 법조인이나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떠나는 실정이다. 반대로, 전북은 한국 근현대 법조계를 일군 법률가 김병로·최대교·김홍섭을 기리는 '법조삼성' 공원을 마련하고, 동상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마다하고 법원을 지킨 대전지법 천안지원 정봉모 초대 지원장의 흉상이 법원 내에 마련된 것이 유일한 우리 지역 법조인 추모시설이다.
충남대 로스쿨 관계자는 "로스쿨 학생들이 지역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법조인을 찾아, 그로부터 법철학을 배우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나 우리 지역은 그러한 선순환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며 "인물과 역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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