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수학 문제 풀이 그리고 환자 문제 풀이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 수학 문제 풀이 그리고 환자 문제 풀이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문윤수 교수

  • 승인 2022-07-21 16:43
  • 신문게재 2022-07-22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문윤수 교수
문윤수 교수
"이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풀 사람, 나와서 칠판에 풀어보세요!"

고3 수학 수업시간 때의 일이다. 수능준비에 빠듯한 진도와 획일적인 풀이법을 설명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기에, 사실 수험생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 수업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항상 또 다른 풀이법을 학생들에게 직접 나와 설명할 기회를 주셨다. 그날의 나는 머릿속에 번뜻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칠판 앞으로 당당히 나갔다. 옆에서 나와 같이 또 다른 방법으로 고민하던 짝꿍인 광수도 같이 칠판 앞으로 나갔다. 분필을 들고 문제에 나온 그림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그림, 또 다른 직선을 그려 나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둘의 풀이방법을 칭찬하셨고, 여기에 더해 더 쉽게 푸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정확히 25년 전 수업시간이지만 나의 뇌리에 정확히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매일같이 보는, 머리부터 몸속 여기저기에 피가 나고 팔다리가 부러진 중증외상환자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단순히 출혈 부위만 해결하고 뼈만 고정해선 안 된다. 바로 뒤따라오는 여러 합병증, 즉 폐렴, 패혈증 등을 해결해야 비로소 건강을 되찾게 된다. 역시나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합병증들이 모두 생기고 있다. 불현듯 25년 전 고3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 새로운 풀이방법을 생각해내 칠판 앞으로 걸어나가던 심정이 생각났다. 어려운 문제가 혼자 도저히 안 풀릴 때는 짝꿍 광수와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두꺼운 교과서에는 치료 방법, 약, 검사 등등 누구나 다 아는, 혹은 의료진들이 생각하는 모범 정답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로 도저히 환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상태가 미궁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새로운 선을 하나 그리거나 도형을 거꾸로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 환자를 다시 바라본다. 수학 문제 풀이 시작은 기본 공식, 개념이라는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이 환자에게서 처음 문제부터 하나씩 다시 되돌아보고 지금 상태에 맞는 약물이나 또 다른 치료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환자는 새롭고 현명한 치료 길을 찾은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마치 환자는 난해한 수학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건강의 길을 올바르게 찾아간다.

수학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수상한 히로나카 교수 수업을 듣고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수학에 대한 싹이 굵어지고 아울러 더 발전,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 필즈상까지 수상했다. 허준이 교수 스승인 히로나카 교수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학교에서 수많은 것을 배우는 이유에 대해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대상을 깊이 살펴볼 수 있고 결단력을 유도하는 힘도 갖게 해준다. 나는 환자를 보며 막막하고 답답할 때면 25년 전 수학 선생님을 통해 배웠던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 환자를 살리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 품에 돌려보내기 위해 25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며칠 동안 고민하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얻었던 지혜를 사용한다.

환자가 건강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외과의사 하나의 힘으로는 어렵다. 병원 내에 수많은 의료진 모두의 힘이 합쳐져야 그것을 이룰 수 있다. 더불어 지금의 나는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지혜가 도와주고 있다. 몸속에 있는 피의 두 배가 넘는 10ℓ 이상 수혈을 받고, 팔다리 네 개 중 세 개가 부러진 이 환자가 다시 살아나고 건강을 회복하는 이유는 수많은 의료진이 지혜와 함께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환자가 건강하게 회복한 이유 중 하나는 25년 전 선생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지혜가 한몫한 것이 분명하다./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문윤수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여고·등산로서 상습 신체 노출… 50대 남성 검거
  3. [대전노인신문] 대전 어르신들 체육으로 하나됐다…제25회 어르신 체육대회 성료
  4. 원자력연, 원전 방사능 폐수지 굳혀서 처분기술 개발…특허로 이어져
  5. [대전노인신문] 詩 한 편 편지 한 장
  1. [대전노인신문] 대전 대덕구 목상동 새마을부녀회, '어르신 효 잔치' 개최
  2. [날씨] 추석 연휴 충청권 구름 많아…추석 밤부터 약한 비
  3. 집주인 모자 찾아가 흉기 휘두르고 불 지른 70대 체포
  4. [대전노인신문] "추석 명절 이야기"
  5.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헤드라인 뉴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거리를 걷다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명절 풍경을 실감하게 된다. 온라인 장보기와 간편식, 모바일 선물 등이 일상화된 지금과 달리 약 20년 전 추석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불편했고 느린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추석 풍경이 달라진 것은 많지만 추석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가족과 친지가 직접 만나 웃음과 정겨움을 나누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전 추석의 모습은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사진으로 살펴보자. 먼저 고향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열차표 예매가 정해진..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