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운동을 잘하고 누구는 예술에 뛰어난 감수성을 보인다. 누구는 암기력이 대단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질색이다. 반대로 기발한 발상으로 많은 이를 놀라게 하는 사람은 대개가 단순한 암기나 평범한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다들 저마다의 특성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쓰임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각자가 가진 특성과 재능이 서로 달라 보일지 모르지만, 인류의 관점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우수하고 진화하는 조직을 유지하는데 이바지하는 구조다.
다시 개인 단위로 돌아와서, 개개인은 남과는 다른 특성을 유지하고 나타내려 애쓴다.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머리 모양이나 옷매무새를 달리하고, 말투나 행동거지를 차이 나게 드러낸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현재에도 없고 과거나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우연히 모든 유전정보가 똑같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경험하는 환경의 차이에서 서로 다른 특질들이 만들어진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은 유전자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인류가 진작에 멸망했을 거라고도 한다.
나를 남으로부터 구별하고자 하는 노력은 개성화를 통해 자아실현에 도달하는 과정이자 본능이라고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주장했다. 나아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라는 이름으로 취향과 문화를 통해 개성화가 집단화하고 계급적 특성을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각자는 분명 고유의 특성이 있고 그 특성은 다시 집단화한 모양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를 다양화함으로써 발전의 원동력을 만드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구별 짓기가 차별로 이어질 때 발생한다. 다름을 우열의 관계로 보면 차별로 연결돼 지배와 피지배, 갑과 을, 능력자와 패배자 등의 구분이 만들어진다. 실제 역사 속에서 이러한 구조가 작동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는 많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사회구조를 만들어냈다. 물론 여전히 차별적 요소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은 만들어졌고, 또 차별을 드러내는 것을 표면적으로나마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
그런데도 옹졸한 차별의 마음은 생활 곳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상대를 마음 상하게 한다. 자신도 부끄러운 줄 알다 보니 은밀하면서도 교묘히 포장된 집단의 형태로 뛰쳐나온다. 그중 하나가 학벌이다. 시험이라는 것이 사람이 가진 개성과 능력을 모두 평가할 수 없음에도 인생의 많은 부분이 대학입시 결과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하니 세상의 모든 학부모가 전전긍긍하는 고민거리가 됐다. 감수성이 예민해 창의적 상상이 꿈틀대는 시기에도 부모는 "삼 년만 참아라"라고 다독인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더 큰 노력보다는 수월히 살고 싶은 게으름이 스크럼을 짜고 집단 내 구성원끼리만 상부상조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
그나마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사회가 많이 다양해지고 너그러워졌다. MZ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더 창의적이고 학벌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 결과로 스포츠 스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다양한 분야의 고수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각종 경연에 열광한다. 이는 K-컬처를 만들고 세계가 다시 열광한다. 학벌 사회가 이뤄낼 수 없는 성과다. 최근 대학 통합 문제로 지역 대학의 학생들끼리 학벌을 들먹이는 일이 벌어졌다. 포용하는 마음으로 더 크게 보고 더 멀리 보고 더 지혜롭길 바란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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