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획은 숨겨진 대전의 명소를 찾기 위해서다. 대청호부터 계족산, 한밭수목원 등 대전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는 많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장소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소소하게 이름난 지역의 명소를 찾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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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터널로 진입하기 전 등장한 대전육교.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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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더니 동구에서 진입한 대청호 초입은 물이 마른 모습이었다. 사진=이해미 기자 |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행운은 역시나 날씨다. 대청호로 향하던 그날은 주중 가장 맑은 날씨였다. 대청호 물길을 따라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가는 길, 맑은 날씨가 얼마나 고맙던지 소소한 명소를 찾아 나선 두 번째 여행길은 시작부터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앞서 말했듯이 두 번째 명소 찾기는 동구 대청호다. 나름 대청호와 가까이 살고 있지만,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가본 대청호는 아주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청호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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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원지, 관동묘려, 마산동산성까지 볼거리가 넘치는 대청호. 사진=이해미 기자 |
▲관동묘려(동구 냉천로 152번길 291)=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그나마 역사적 스토리가 묻어나는 곳을 택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관동묘려'다. 중구 오류동에서 출발하니 비래동을 거쳐 대전터널을 타고 곧바로 대청호로 진입하는 코스였다. 대전터널을 진입하기 전 '대전육교'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웅장했고 아치형 육교는 더욱 멋졌다.
빠르게 대전육교와 대전터널을 지났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길은 매우 한산해 금세 대청호로 진입할 수 있었다. 독자들에게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대청호를 보여주고 싶었던 목적이 가장 컸는데, 대청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물이 말라버린 밑바닥이었다. 물이 말라버린 지 꽤 오래됐는지 초록의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생긴 시간의 경계가 수면 인근에 띠처럼 드러나 있었다. 최근 잦은 비가 내려 체감하지 못했지만 심각한 가뭄이 대청호의 지형까지 바꾸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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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에서 만난 관동묘려. 고흥류씨의 재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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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묘려에서 바라본 대청호. 멋있는 풍경이었다. 사진=이해미 기자 |
구불구불 길을 달리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미륵원지와 관동묘려, 마산동산성을 알려주는 문화재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제 곧 목적지, 그러나 마지막 관문에서 온 신경을 쏟았다. 관동묘려가 있는 마산동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다. 산길을 깎아 만든 것이라서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아주 좁은 길이라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 혹 온다며 한 켠으로 비켜줄 수 있도록 천천히 서행하며 조금씩 진입해야 했다. 관동묘려는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다. 길은 산속으로 이어지는데, 개인 사유지라 더는 갈 수 없어 길의 끝에 차를 세웠다.
관동묘려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보다 그림 같은 대청호 풍경이었다. 저 멀리 산, 저 멀리 호수가 무더위를 뚫고 초행길을 달려온 고생에 보답해주듯이 아주 멋졌다. 주변을 한 바퀴 휙 둘러봤을 뿐인데 세월과 세월의 멋에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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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관동묘려는 문이 잠겨서 문 틈 사이로만 살펴봐야했다. 사진=이해미 기자 |
관동묘려는 쌍청당의 주인 송유의 어머니 고흥류씨의 부인 묘 인근에 제향을 지내기 위해 지어 놓은 재실이다. 고흥류씨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는데, 친정 부모는 고려 풍습대로 재혼을 시키고자 했으나 류 씨는 아이를 업고 500리를 걸어 시댁이 있는 회덕으로 간다. '삼종지의'를 따르겠다는 며느리의 의지에 감동받은 시부모가 며느리를 받아들였고, 류 씨는 오랫동안 정절과 효행의 상징으로 남았다. 문이 잠겨 있어 안쪽까지 구경할 수 없었다.
관동묘려 윗편에는 '추원사'가 있다. 추원사는 은진 송씨가의 재실이다. 절경은 추원사에서 바라본 대청호였다. 추원사 아래 관동묘려의 지붕, 대청호로 이어지는 풍경까지 이질감 없는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품어져 있었다. 추원사에서 대청호를 바라보고 왼편으로 가면 송명의 선생 유허비 전각으로 가는 성행교가 있다. 성행교 중간에 적송 한그루가 누워 있듯이 자라고 있는데, 몸을 구부려 다리로 들어가면 적송의 힘찬 나무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지금도 꿈틀거리며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듯 역동적인 형태의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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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사 또한 은진송씨의 재실인데, 문이 잠겨 있었다. 유독 추원사에 올랐을 때 날씨가 가장 좋았다. 그만큼 덥기도 했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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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사에서 바라본 대청호 풍경.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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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교에 누워버린 적송 한그루.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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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교 안으로 들어가면 적송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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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원지 또한 문이 잠겨서 볼 수 없었다. 회덕황씨가 만든 고려 말 사설 여관이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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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 걸어 들어갔을 미륵원지 초입 모습. 바로 저 고개만 꺾으면 집이 있다고 한다. 사진=이해미 기자 |
▲미륵원지(동구 냉천로 152번길 80)=관동묘려에서 나오다 보면 왼편으로 미륵원지가 있다. 굳게 닫혀 있어서 이곳 또한 볼 수 없었지만, 말로만 듣던 미륵원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어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미륵원지는 고려말 회덕황씨에 의해 지어진 사설여관이다.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던 곳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대전에 1개역과 7개원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위치가 밝혀진 곳은 미륵원뿐이다.
관동묘려와 미륵원지로 들어오는 차량은 드문드문했지만 그래도 꾸준했다. 누군가는 관동묘려를, 누군가는 추원사와 관동묘려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를 기억하고 다시 흘러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청호 여행은 짧은 코스였지만, 한 세대를 압축해 본 것만 시간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대청호의 모습도 변하지만, 대청호 물줄기를 따라 새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색이 바래지 않았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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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중간에 있는 섬. 가마우지섬 혹은 햄버거섬이라고 불린다. 내 눈에는 거북이형태의 섬처럼 보였다.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이상해꽃처럼 등에 나무를 심은 그런 섬. 가마우지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가마우지새가 유독 이곳에서만 변을 본다고. 그래서 간혹 이 섬은 변으로 뒤덮인 하얀 섬으로 보인다고 한다.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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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넓디넓은 대청호의 일부분. 사진=이해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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