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이사장 |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텀블러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이 늘어났음을 체감한다. 개개인의 시민이 친환경적 실천을 하는데 텀블러 사용만큼 간단하고 분명한 것이 없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을 직접 체감도 할 수 있고, 습관만 들이면 생각보다 불편하지도 않다. 텀블러 사용에 습관이 들었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들에 관심이 생긴다. 평소 소비하는 물건 중에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내가 조금 더 친환경적 실천을 늘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많은 시민이 먹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일상의 모든 과정에서 친환경적 실천을 늘려가고 있고, 이러한 실천들은 이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가는 것 같다.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얘기했던 탄소중립과 비건, 제로웨이스트, 자원순환, 에너지전환이라는 단어들을 TV 속의 광고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것도 친환경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시민들의 실천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입으로는 탄소중립을 외치고 시민들의 실천은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실천은 무시하는 정부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시민은 시민의 노력이 필요하고 정부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구를 위해 텀블러를 사용한다면 정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시민들이 편리함을 포기하고 텀블러라는 불편을 감수했다면 정부는 어떤 편리함을 포기하고 어떤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환경을 파괴하고 토건사업으로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편리함 대신 조금 느리더라도 지역 개발은 환경 파괴의 바깥에서 고민하겠다는 불편을 감수하는 정부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꿈 같은 일일까?
최근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만나 이런 얘기를 한다. '텀블러 쓰면 뭐하나, 보문산에 케이블카 만드는데', '텀블러 쓰면 뭐하나 가덕도에 공항 짓는데' 왜 지역의 발전은 항상 환경 파괴를 상수로 두고 이루어지는 것일까.
텀블러로는 지구를 지킬 수 없다. 텀블러와 시민의 실천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지구를 지킬 수 있다. 시민의 실천 뒤에 숨어버린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탄소중립은 없다. 누군가는 기존의 편리함을 포기해야 하고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김영진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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