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환 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가 자신이 그린 유관순 표준영정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염소화가'로 잘 알려진 윤 교수는 40년 가까이 염소를 비롯한 소, 닭 등 제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동물의 사색적 표현을 통해 관조적 사유를 작품에 녹여내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대학 시절 단군 영정을 그린 계기가 확장돼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초상화 작업을 이어온 윤여환 교수는 초상화의 르네상스 시기였던 조선시대 초상기법을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통해 당시의 화풍과 유행까지 재현·복원하며 우리나라 초상 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초상화 같은 극사실주의는 물론 묵상을 통한 자동필기 형상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 등 구상과 비구상(추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윤 교수를 만나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철학,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한국미술의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국가표준영정이 영상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 주목을 받게 됐다. 소감과 함께 영정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먼저, 당시 어린 소녀의 몸으로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을 외치다 불꽃같이 청춘을 바친 유관순열사를 전 세계에 알릴 계기가 조성돼 매우 뿌듯하게 생각한다. 유관순열사 영정은 드라마 속에서 십만 원권 통일지폐의 모델로 등장한다. 이번 '종이의 집' 드라마를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하루빨리 통일지폐가 실제로 제작되고 사용될 날을 기다려본다.
유관순열사의 새 영정 제작은 2005년 봄부터 시작됐다. 당시 충남 천안 유관순열사 추모각에 봉안돼 있던 영정(제15호 국가표준영정 지정)은 장우성 화백의 그림이다. 하지만 추모각에 봉안한 지 한 달 만에 복식과 자세 등 고증 논란이 불거지면서 영정 교체 논의가 제기됐다.
실제로 흰 저고리에 남색 치마와 꽃신을 신은 열사의 복식이 그 시대에 맞지 않고, 고문으로 인해 퉁퉁 부은 얼굴로 찍은 수형자 기록사진을 토대로 그려 '유관순 누나'가 아닌 40대 아줌마의 모습으로 표현돼 실제와 달랐으며, 손의 모양도 당시 예법에 어긋나는 등 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새로운 영정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2005년 8월 25일 유관순 영정 제작 작가로 선정됐고, 천안시와 유관순열사 표준영정 제작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정확한 고증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자료를 모으고 연구했으며, 당시 유 열사의 소꿉친구 남동순(당시 104세) 할머니의 고증이 중요한 단서가 됐다.
사진 속 유 열사는 까만 치마가 아닌 흰색 저고리와 흰 치마를 입었으며, 신발도 까만색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또 당시 목판본으로 인쇄한 태극기와 함께 다니던 학교의 마룻바닥 등 철저한 고증을 거쳐 확인한 후 영정에 반영했다. 그림 제작에 2년여가 소요됐으며, 2007년 제78호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받았다.
윤여환 교수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종이의 집' 드라마에서 통일조폐국 로비의 벽면에 대형작으로 설치된 '묵시찬가(默示讚歌)'는 명상적 사유문자를 조형화한 작품이다. 현상과 본질, 순수 조형감각과 신비적 로고스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품들도 사유의 풍경을 현대적 조형미를 가미했으며, '힐링의 공간'으로 보면 좋겠다.
-유관순 영정을 비롯해 박팽년, 논개, 김만덕 등 표준영정에 이어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렬지사', '협녀-칼의 기억'의 화첩도 그렸다. 초상화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초상화 기법에서 동서양의 차이가 크다. 특히 한국 초상화는 조선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그 핵심으로 얼굴 등 피부 질감을 표현하는 '육리문법(肉理紋法)'과 비단 뒷면에 채색하는 '배채법(背彩法)'에 의한 '핍진성(逼眞性)'을 꼽을 수 있다.
영정을 그릴 때 아교랑 섞은 천연안료를 사용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햇빛에 발하는 식물성 안료와 달리 광물성 안료는 변질이 적어 보존성을 높인다. 영정의 얼굴표현은 대자석(적철석 일종의 광물질)을 빻아서 제작한 일종의 물감과 호분(조개를 가루낸 것)을 만들어 비단에 그린다.
유관순 영정은 색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조선시대 어진 화가들만 사용했던 육리문법을 되살려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빛의 개념을 가미한 서양의 그림과 달리 동양의 초상화는 평면 구도로 진솔한 표정에 중점을 둔다. 이는 형태를 통해 정신을 나타내는 '이형사신(以形寫神)' 개념을 불어넣는다.
-초상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고려불화 대다수는 왕실과 귀족의 후원 아래 제작됐다. 그 때문에 색채가 화려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아교에 금가루를 개어 섬세함과 찬란함을 더했으며, 비단 후면에 안료를 두껍게 칠해 앞으로 배어 나오도록 하는 배채법(背彩法)으로 깊이가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러한 기법은 조선시대 접어들면서 어진과 공신들의 초상화기법으로 전수된 반면,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조선 불화는 서서히 퇴보됐다. 특히 스님 진영은 도식적이고 도안적으로 변해 기법이 급격히 퇴보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국에 대한 정체성을 국민에게 어필하고, 국왕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어진을 많이 그리게 했다. 그러다 보니 원본을 보고 그리기를 반복하며 이모본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이어오면서 지금 남아있는 이성계 어진은 당시의 형태와 거의 똑같다.
또한 당찬 기세를 드러내기 위해 의습선(衣褶線)을 직선으로 그려 강한 국가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으며, 과거 박팽년 표준영정 작업에 이성계 어진 기법을 따랐다.
-추상을 그리다가 1995년 무렵부터는 초상인물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장르만 추구하지 않고 비구상에서 극사실에 입각한 초상화를 넘나드는데, 정형화하지 않은 작품 철학이 궁금하다.
▲사실 초상화 작업은 대학 시절부터 해왔던 분야다. 홍익대 3학년 때 단군영정 등 초상인물을 그려 등록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당시 어느 한의원 원장의 조상이 조선시대 유명한 공신이었는데, 비단에 족자그림 공신상을 의뢰받아 그린 경험도 있다. 이후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초상인물 작업을 했고, 백제도미부인 국가표준영정 제작(제60호 지정)을 비롯해 다수의 표준영정을 그렸다.
표현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미적 체험과 조형적 실험에서 얻어낸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다. 감성 표현의 매개체로 염소를 그렸으며, 본래품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하나는 사유의 개념을 여러 표현방법으로 풀어내는 작업이고, 또 하나는 얼굴 없는 선현들의 초상을 고증학적 방법과 과학적 분석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의 근본에 맞닿아 있는 철학적 화두가 내 작업의 원동력이다.
-관조적 사유 작가로 40년 넘게 '염소'를 비롯해 소, 양, 닭 등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왔다. 작품에 대한 철학을 설명한다면.
▲어린 시절 고향 언덕에서 만난 까만 '염소의 눈'을 보게 됐는데, 홍채가 떠 있는 모습이 마치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피안의 세계를 보는 것 같아 신비로웠다. 그 신비에 찬 오묘한 눈빛에 매료돼 1980년부터 사색의 염소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염소나 양, 소, 닭 등의 동물과 명상에서 얻어낸 사유문자 등을 통해 자성(自性)에 대한 화두를 철학적 사유개념으로 도출했다. '희생(犧牲)'이라는 한자에는 소 우(牛)변이 있다. 제물을 상징하는 동물의 철학적 화두를 끌어내는 등 모든 그림을 사유의 개념으로 풀었다.
시인 노천명은 '사슴'으로,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사유에 관해 설명했다. 신라시대 반가사유상은 자세를 통해 사유를 말하듯 내 그림은 염소의 눈과 표정으로 사유를 표현했다. 그러던 중, 1992년부터 묵상에서 비롯되는 사유문자에 집중하게 됐다. '묵시찬가'는 묵상에서 얻은 자동필기 된 이미지를 그린 작품이며, 최근작인 '곡신사유'는 도덕경에 나오는 노자사상을 형상화했다. '곡신(谷神)'은 계곡의 신을 의미하는데, 우주 만물의 물은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비롯된다. 곡신은 인류의 기원을 의미하며 여성의 자궁을 뜻하기도 한다. 세상의 기원으로의 상징화를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성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윤여환 교수가 자택 거실에 마련된 작업공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성희 기자> |
▲한국 경매시장에서도 조선시대 초상화는 여전히 고가로 낙찰되고 있다. 지난 서울옥션 경매에서 채용신이 그린 '고종황제 어진'은 2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은 작자 미상의 '강인초상과 교지'로 치열한 경합 끝에 시작가의 3배에 달하는 3억5000만 원에 팔렸다. 이 작품은 강세황의 첫째 아들인 강인의 초상화와 그의 부인인 숙부인 이 씨의 교지가 함께 묶여 출품됐다.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초상화가 외국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금도 세계 경매시장에 내놓으면 비싼 가격에 팔리는데,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올라갈 것을 예상해 경매에 잘 내놓지 않는 경향도 있다.
초상화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나라마다 개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초상화 왕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조선시대 때 절정을 이뤘다. 공신이 죽으면 직급을 한 단계 올려 영정을 그렸는데, 예컨대 차관급이 죽으면 장관 의복을 입은 모습을 그렸다. 본래 '영정'은 상반신을 비단에 그려 족자로 만드는 형태를 말하며, 지금 장례에 사용하는 상반신 이미지도 조선시대 때 유래했다.
-40년 동안 미술대학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한국화 전공을 만들고 예술대학장 역임 등 후학 양성과 대학발전에 힘써 왔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적 제자양성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향후 한국화 화단의 동향과 흐름에 관해 설명해 달라.
▲퇴임 이후의 삶에 대비해 2003년부터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 한국화 반을 개설했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자리가 잡혀 현재 70명이 넘는 사회적 제자 회원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학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점점 시들어가는 대학의 한국화전공과 한국 화가들의 젊은 학생 배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한국화를 배우고자 하는 고령층의 사회적 작가 지망생들은 늘고 있다. '백세시대'를 대비해 이들이 아마추어가 아닌 진정한 프로작가로 발돋움할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다.
대담=우창희 뉴스디지털부장·정리=한세화·사진=이성희 기자 kcjhsh99@
◇윤여환 교수는?
▲1976년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79년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1985~2021년 북경중앙미술학원 초대 등 국내외 개인전 30회 개최 ▲1980~2017년 국전 특선 4회 수상 및 운영, 심사위원장, 초대작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양그림 특별전 초대 ▲1995~2010년 유관순, 논개, 박팽년, 김만덕, 정문부, 도미부인 등 국가표준영정 7위 제작 ▲2007년 미술세계작가상 수상(월간미술세계) ▲2003년 영화 '스캔들' 화첩 및 숙부인상 ▲2014년 영화 '협녀' 초상화 제작 ▲2010~2021년 초등국어 및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작품등재 ▲2009년 네이버지식백과 한국미술 산책 '사색의 여행' 작품등재 ▲2011년 위키백과사전 '윤여환' 등재 ▲2014년 'TJB화첩기행_내포성지순례편' 2부작 '한국의 마더테레사' 초상화 구현 ▲2016년 대한민국 미술인상 수상(한국미협) ▲2018년 공익광고 'TJB철새보호캠페인_철새가 그리는 풍경, 천수만' 출연 ▲2019년 'TJB창사특집_다큐판타지 김호연재 영정' 제작 및 방송(2020 한국민영방송대상 최우수상 수상) ▲2020년 성 이광렬, 김임이, 손소벽, 권희, 유진길, 유대철 등 표준성인화 6위 제작 ▲2020년 홍조근정훈장 수훈(대통령)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한국판에 유관순영정 등 작품 5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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