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연륜이 많아진 것만큼이나 내가 읽어낸 책의 분량도 많아진 것일까. 이런 상황에 비유해서 우리 선인들은 서권기라는 말로 교양 수준을 가늠해보곤 했다. 다시말해, 세속과의 거리 측정인데, 서권기란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이 쌓여서 궁극에는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책의 기운으로 알려져 왔다. 책 속에 묻혀 살게 되면, 이런 기운이 자신에게 깃든다는 것이다.
유교 원리가 지배 담론이던 시절에는 책 향기를 맡고 서권기를 뽐내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했다. 현실과 부딪히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교양을 고양하는 것이 수신의 한 덕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과 더불어 사는 삶이란 관념적이고 현실추수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이 중심이 된 근대 사회에 들어서는 이런 상태에 머무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목소리가 없는 삶, 혹은 그러한 사회란 책임 회피라든가 현실에 대한 긍정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실천 없는 지식, 비판 없는 지식이란 하등 쓸모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중심적인 지식, 수양 위주의 지식이 근대 사회에서 불필요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례를 일제 강점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 말기인 1930년대 후반은 암흑의 시절이었다. 소위 내선일체라는 구호에 우리 말을 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습속 역시 보존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런 체제에 급속히 동화해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삶을 우리는 친일파라고 불러왔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세속적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을 완벽히 고립시키는 경우이다. 여기서 세속과의 타협이란 전연 가능하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필요한 것이 책 향기에 묻히는 것, 혹은 서권기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가 세속으로 눈을 돌리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1930년대 말 이 서권기를 몸소 실현한 사람이 가람 이병기이다. 그는 여러 향기에 묻혀 이 시기의 암울한 현장을 비껴간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데, 그가 맡은 향기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난초 향이고 다른 하나는 책 향기이다. 난초란 그의 표현대로라면 미진(微塵)도 가까이하지 않고 우로(雨露)만 받고 산다. 그는 그 향기 속에서 세속을 잃어버리고 청산과 같은 삶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후 두 번째 그의 행보는 책 향기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밝은 대낮에도 책을 읽었고, 어느 밤조차도 그는 조그만 촛불을 켜놓고 계속 책을 읽었다. 독서 중에 넘기는 종이마다 바람이 일었고 책향기 역시 같이 흘러나왔다. 그는 향기 속에서 자신의 의식, 혹은 이성을 마비시켜 간 것이다.
근대인들의 삶이란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뿌리는 계몽이거니와 소위 인과론이 만들어진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많은 가능성과 희망의 빛을 주었음에도 근대는 어두운 그림자를 인류에게 드리웠다. 이성이 과도하게 확장되면서 도구화됐기 때문이다. 이성이 만들어낸 것이 극단화된 우경화였고, 제국주의였다. 그리하여 이 부정성을 초월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이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성은 본능이나 감각의 세계를 무디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세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향기는 죽어있는 감각을 일깨우고 본능을 부활시키는 매개이다. 가람 이병기가 책과 난초의 향기를 통해서 이성을 넘어 서권기를 완성하고자 한 의도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이 서권기를 통해서 세속과 거리를 두면서 일제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 시기 그의 책 향기라든가 서권기가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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