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로 읽는 더 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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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로 읽는 더 큰 세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7-1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제20호 대금 정악 기예능보유자였던 김성진(金星振, 1916 ~ 1996) 선생은 천하가 알아주는 대금명인이다. 명인이 거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왕직아악부 1기로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여서 엄청난 수련을 하였음에도 개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산에 올라가 고무신 벗어놓고 대금을 연주, 한 곡이 끝나면 모래알 하나를 고무신에 담아, 고무신에 모래가 꽉 차야만 내려오곤 했다 전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예술의 세계이다.

음악은 단연 소리예술이다. 눈으로도 듣고, 나아가 온몸으로 듣기도 한다. 사람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보통 20Hz~20kHz라고 한다. 나이, 성별 등 신체조건을 포함한 개인차가 있다. 개는 45kHz, 고양이는 65kHz까지 듣는다 한다. 돌고래나 박쥐가 내는 초음파는 사림이 들을 수 없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오래 전에도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노자도덕경 41장에 나오는 말이다. "크게 모난 것은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음은 소리가 희미하고, 큰 형상은 아무런 형태가 없다.(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이와 같이 도는 숨어있어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으나 아낌없이 베풀고 만물을 성취시킨다는 도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말이다.

사방을 예기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인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모서리도 알 수 없다.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진다. 세간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큰 소리는 희미하다.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우주가 움직이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우주의 모습이 보이는가? 오감으로 느끼는 인식 밖의 세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느끼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느낀다. 아는 만큼 인식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자나 말을 제거한 문학, 음악에서 소리를 제거하거나 미술에서 공간과 형상을 제거하면 무엇이 될까? 김정래의 "낙파 이경윤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의 무현금 연구" 논문을 흥미진진하게 본 일이 있다.

월화탄금도
'월하탄금도' 이경윤·견본수묵·31.2x24.9cm·고려대학교 박물관
그림은 이경윤(李慶胤, 1545 ~ 1611) 작 <월하탄금도> 이다. 이경윤은 성종의 8남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의 증손이다. 본인은 물론, 동생과 세 아들 모두 서화에 능한 예술가족이다. 한편으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온몸으로 겪어낸다. 전쟁이 아니라도 조선의 숭유 정책과 별개로 다양한 철학이 공존하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험난한 세상에 처하다보면 누구나 삶이 무엇인지,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본보에서 이경윤이 그린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도학에 심취되어 있었던 듯하다. 어찌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그립지 않으며, 유유자적(悠悠自適), 무위자연(無爲自然)하고 싶지 않았으랴.

높은 산 중턱인 듯하다.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쓰러질 것 같은 절벽아래 한 사람이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다. 눈앞에 무한공간이 펼쳐져 있고, 둥근 달이 떠있다. 오른쪽으로부터 퍼져 나가는 사선의 동세가 생동감을 준다. 그러면서 앞 쪽 바위를 강묵으로 처리하여 그림이 퍽 안정되어 보인다. 사이에 더벅머리 동자가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다. 앞에 세발 달린 풍로가 있고 그 위에 부드럽게 휜 주구를 가진 탕관이 놓여있다. 차를 끓이고 있는 것이다.

공교로운 달밤, 깊은 산속에 앉아 거문고 연주하며 차를 즐긴다. 얼마나 곱고 멋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거문고에 줄이 없다. 남종화에서는 워낙 생략이 많아 생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무현금(無絃琴)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필자에게는 무현금이든 생략이든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소리 없는 소리, 마음의 소리를 연주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고, 듣고 있다. 자연에 가까운 소리, 하늘의 섭리가 반영되어야 가장 아름답다 하는 것이 동양적 사고다. 자연이 음악이고 음악이 자연이다. 노자의 사상이기도 하다.

무위자연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상이다. 무위는 행위가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과장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무와 유는 상호 의존적이다. 때문에 영구하다. 무가 있어 유가 있고, 유가 있어 무가 있는 것이다.

의견대립은 전체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부분적인 것을 절대적 진리로 간주할 때 일어난다. 무절제한 대립은 낭비이다. 그림을 보며, 더 큰 세상을 읽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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