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마음의 시간은 다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을 하면 약속 시간이 도달할 때까지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갑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함께 하는 시간은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지요. 좋은 일을 기다릴 때는 시간은 느림보 걸음이고, 챙길 일이 많을 때는 시간은 날개를 달았고, 힘든 노동을 할 때 시간에는 쇠뭉치가 달립니다. 마음의 시간으로 청년의 시간당 속도는 50km, 노인은 시간당 100km, 임종을 앞둔 환자의 하루는 일반인의 1시간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즐거운 활동은 시간을 짧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했겠지요.
시간은 오직 신(神)만이 조정하지만 마음의 시간과 물리적 시간이 맞아 떨어진다면 누구나 시간의 제약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지 않을까요?
시간에 대해 작가나 철학자들도 언급을 많이 했지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폴란드의 시인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시간은 두 번은 없다'고 했습니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고 했고,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변화가 생긴 이상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철학자 칸트도 "시간은 동시(同時)를 막기 위한 도구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 시간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지요.
쉼보르스카는 시작과 끝은 두 번은 없다고 했지만, 시작 전에 다른 끝이 있고, 끝 이후에 다른 시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에서 끝이 오고, 또다시 시작이 되기 때문에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나 그 농도는 개인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것이지요.
물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들도 있지요. 그들은 '시간이 인간의 속도 내에서만 시간화 된다'고 주장하면서, 시간은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찰나에 불과한 생을 사는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의 구분이 우주 질서에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그들은 우주에서의 시간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구라는 협소한 공간에 사는 인간에게는 시간은 균일하고 공평하며, 지나간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통념이 아닐까요?
가장 긴 시간은 영겁인데 이 영겁은 인간이 담을 수 있는 생각 너머에 있다는 '무한대'의 시간입니다. 영겁에 반대되는 찰나는 '무한소(小)'의 시간입니다. 명주실이 끊어지는 순간의 64분의 1이 찰나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간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지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연인을 기다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시간에서 우주 질서에서의 시간까지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쉼보르스카의 '순간'이라는 시로 돌아왔습니다. "……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 /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의 순간 / 지속되기를 모두가 그토록 염원했던 / 지상의 무수한 시간 중 하나"
염홍철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염홍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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