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냉전체제 시기와 냉전체제 와해 이후에도 서유럽은 유럽사에서 볼 수 없던 가장 긴 시간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 후유증이 작금에 이르러 전쟁의 도화선으로 재등장했다. 러시아의 공격은 정식 선전포고조차 없는 비열한 전쟁으로 등장했다. 아마 선전포고의 후과가 너무 무겁기에 국제법에 어긋한 행동을 취한 것 같다. 아무튼 우-러전쟁은 언젠가는 휴전과 협상을 통해 전쟁배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무리될 것이다.
우리가 전쟁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우리 곁엔 전쟁도발 개연성이 상시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실 강력한 독재자나 지도자라 해도 개전을 선언하기 쉽지 않다. 승패를 떠나 그만큼 막대한 희생과 결과가 두려운 것이다. 국가가 한시적으로 '합법적 살인'을 허용하는 행위가 곧 전쟁이지만, 여기에 이념과 가치관 및 다양한 갈등까지 섞어지면 전쟁은 더욱 가열된다. 전장으로 등 떠밀려 나가는 자들은 국가와 전쟁결정가, 즉 그런 지도자를 탓할 기회와 저항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익을 앞세운 지도자의 아둔한 결정과 특히 이념과 가치마저 때론 독약이 되기도 한다.
서독 초대 수상 아데나워는 동서진영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고심에 빠졌다.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눈총과 죄과를 간가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동서진영 간의 분열을 마냥 지켜만 볼 수 없는 서독이었다. 아데나워의 선택과 결정은 서방과의 연대(west integration)였다. 이후 서독은 동독과 통일을 이루고 서방과의 유대관계를 든든하게 유지해왔다. 그 덕에 유럽에서 강력한 지도적 국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번 유럽전쟁은 재무장까지 허용하면서 독일을 다시 전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역사의 변증법이자 역설이 아닐 수 없지만, 차제에 2차 대전 주범국 독일과 일본은 재무장과 타국공격까지 허용되길 기대하는 현실이다.
냉전체제 초기에 동서독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 즉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 한국전쟁이 3차 대전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예상도 있었지만, 한반도의 분단으로 그런 예상이 빗나갔다. 반세기를 넘겨서도 남북한의 대결국면은 여전하다. 반면에 한미동맹과 북·러·중 간의 동맹도 여전하다. 우리 주변국 간에 적대적 관계와 동맹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니, 한반도는 아직도 뜨거운 화로다.
유럽전쟁의 상징성과 전망을 고려하면 3차 대전 발발 또는 신냉전체제의 등장이 우려되고 있다. 한반도 입장에선 유럽전쟁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유럽전쟁으로 그간에 구축되었던 세계화 현상마저 급격하게 퇴색될지도 모른다. 기존의 경제, 외교 및 안보 관련 사안도 신냉전체제 관점에서 다뤄질지도 모른다. 서유럽국가를 중심으로 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유럽연합)의 미래도 함께 변할 것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NATO 회의에 참가한 것 자체가 그런 복잡한 국제사회의 변화를 예고해주고 있다.
국제사회는 지극히 현실주의로 움직인다. 국가는 국익 우선과 자국의 국민을 지켜야만 하는 중대한 책무가 있다. 우리 국민은 나로호가 우주로 향하고 각종 방산사업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북한과의 대결국면이 심상치 않다는 현실도 잘 알고 있다. 유럽전쟁을 먼 나라의 사안으로만 여겨선 안 된다. 윤 정부는 한미동맹의 틀을 지키면서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외교를 펼쳐주길 바란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설정도 한미일 관계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 경제, 안보 및 외교의 선택과 집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서준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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