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희 지점장 |
2018년 11월 경 4명의 남성이 모여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모임에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로빈 월셔 저)를 읽었다. 이 책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적인 남성의 연대가 여성에게 자행하는 폭력과 억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모임을 가기 위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부끄러움과 마주해야 했고, 동시에 모임에 가서 솔직히 나를 나눌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용기를 내어 모임에 참석했고, 모임 사람들과 책을 중심으로 준비해 온 대화를 나누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는 비슷한 경험과 고민이 있었고, 서로의 연대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가감 없이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화는 서툴렀지만, 진솔한 대화들을 통해 왜 우리가 모였나 어렴풋이 자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분위기, 따스한 교감은 여전히 내 안에서 대화의 희열을 알게 한 인생의 극적인 한 장면이 되었다.
그 후 대화에 갈급했던 우리는 자주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반에는 매주, 현재는 2∼3주에 한 번 정도 모여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구성원의 변화와 새로운 인원의 보충으로 8명이 모이게 되었고, 지난 6월 중순 모임까지 셈하여 보니 벌써 57번 정도 진행했다. '페미니즘 알기'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다루며 여전히 치열하게 대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참을 수 없는 대화의 즐거움'을 누리며 성숙한 대화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우리는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SNS 발달은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제는 과거에 알 길이 없던 유명 인사들, 국경선 너머의 타인의 일상조차 옆에 있는 친구처럼 보고 댓글이나 DM으로 교류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사회적 관계는 오히려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 '고독 지수'(한국임상심리학회)가 100점 중 78점에 달하며,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울증, 자살, 혐오 문화 확산 등의 사회문제도 전보다 많아졌다. 초-연결 시대의 이면은 여전히 어둡다.
지난 5년간 이어온 대화 모임을 반추해 본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직접 만나 나를 성찰하는 타인과의 진솔한 대화의 부재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특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속마음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남성과 함께 대화하기를 꿈꾸고 있다. 변화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 믿기에.
지난 6.1 지방선거 청주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가 출마했었다. 우리 모임은 이들을 지지하며 작은 마음을 보탰었다. 그래서 이번 2022년 7월 11일 저녁 7시에 NGO 지원센터 모여서 당시 후보자분들이 오셔서 6.1 지방선거 청주 페미니스트 연대의 도전과 실험에 대한 얘기를 나눠주기로 했다. 또 얼마나 즐거운 대화가 오갈지 벌써부터 즐겁다. 참을 수 없는 대화의 즐거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조천희 지에이코리아 한밭지사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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