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소년가장'이라는 척박한 환경과 사회적 냉대의 주홍글씨였다." 그렇지만 그는 인생의 반전과 성공을 위해 도전했다. "결혼 후 자녀를 보면서 비로소 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동안 읽어댄 책은 만만찮다. 덕분에 글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으며, 덕분에 3권('초경서반' 포함 4권)의 책을 출간했다." =
모 교수님이 나의 책을 보신 뒤 쓰신 글이다. 면구스러웠지만 사실이다. 나는 별명이 '홍키호테'다. 엉뚱한 짓을 잘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럼 나는 그동안 무슨 엉뚱한 짓거리를 벌였을까?
먼저 중학교라곤 문턱도 넘지 못한 무지렁이가 지천명 나이에 감히 대학에 갔다. 3년 과정의 사이버대학인데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했다. 졸업식 날, 독야청정(獨也靑靑)으로 학업 최우수상까지 받았다.
1만 권의 독서가 그예 빛을 발한 것이다. 현재 10곳 이상의 언론과 기타 매체에서 시민기자로 활약하는데 직함은 제각각이다. 시민기자를 필두로 기자단장, 집필위원, 편집위원 등 다양하다.
지난 5월에는 모 굴지의 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에 입학원서를 냈다. 참으로 감사한 그 대학의 주임교수님 추천 덕분이었다. 따라서 그 수업 과정을 성실히 마치게 되면 나의 학력은 기껏 초졸에서 일약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자가 되는 셈이다.
3년 과정을 배운 사이버대학은 불행하게도 교육부 비인가 대학이다. 하여 나는 그동안 의도적으로 '그 학력'을 이력에서 뺐다. 아무튼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과정 또한 나로선 다분히 홍키호테적 발상이자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민배우' 송강호가 5월 28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송강호는 1997년에 개봉한 영화 <넘버3>에서 여관방 안에 졸개들을 모아놓고 무릎을 꿇린 뒤 일장 연설을 한다.
"라면만 먹고 금메달 딴 현정화처럼 (너희들도 평소에 지독한) 헝그리 정신을 가지라"고 큰소리친다. 이에 똑똑한(?) 부하 하나가 "그건 '현정화'가 아니라 '임춘애'입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러자 송강호는 분노로 목소리를 떨고 말까지 더듬는 연기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당시 그가 외친 "내가 현정화라고 하면 현정화야!"는 그해 영화계 최고 유행어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런 말을 추가하고 싶다.
"홍키호테라고 하면 그건 바로 도전(挑戰)이야!" 나는 좋은 습관을 하나 견지하고 있다. 그건 만날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글을 쓰는 것이다. 명심보감에 이런 글이 있다.
- '일생지계(一生之計) 재어유(在於幼), 일년지계(一年之計) 재어춘(在於春), 일일지계(一日之計) 재어린(在於寅)' - 이걸 풀어보면 '일생의 계획은 유년 시절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라는 뜻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도전 없는 성공은 없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50% 실패하는 것이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100% 실패하는 것이다. 경영대학원 수료식 때 다시금 학업 최우수상을 받을 장면이 벌써부터 즐거운 오버랩으로 다가온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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