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 선임연구원 |
우리는 통념적으로 대부분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한다. 옛말에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생각과 달리 주변의 일들을 이것저것 건드리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명확한 전문분야가 없는 제너럴리스트는 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일 뿐인가? 등의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 툴레인대의 제니퍼 멀루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외로 스페셜리스트들이 비슷한 자격의 제너럴리스트에 비해 취업확률과 연봉에서 35% 가까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제외하면 오히려 비슷한 수준의 전문가가 많이 있으므로 특별한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물론, 해당 연구는 최상위권 학교에서 MBA를 마치고 투자은행에 취업한 졸업생을 대상으로 수행되었기에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 제너럴리스트의 넓은 시야와 소통 능력이 특별한 장점이 될 수 있음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에는 제너럴리스트를 단순히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한 넓은 시야와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이해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과학자에게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란 무엇일까? 과학자에게도 스페셜리스트가 가지는 전문성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적 역량과 식견을 바탕으로 과학 분야 3대 학술지인 Nature·Science·Cell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과학계에 몸을 담은 모든 연구자의 목표이다. 동시에 제너럴리스트가 가지는 통섭과 창의도 과학자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여러 분야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수행되는 '융합 연구'는 수십 년간 과학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융합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 간 협력이 늘어나면서, 두 분야의 용어, 환경, 접근방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링커(Linker)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과학계에서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논의는 최근 4차 산업혁명 이후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자원이 등장하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빅데이터에 단순히 전통적 통계분석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생성되는 환경, 형태, 맥락, 흐름을 고려해 솔루션을 도출하는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가 생겨나면서, 생물학, 의학, 통계학, 인문학 등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 외에 적정 수준의 분석 기술과 도메인에 대한 실무적 지식, 그리고 타 분야와의 소통 능력이 갖춰진 제너럴리스트에 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이쯤 되면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스페셜리스트는 전문 영역을 바탕으로 타 분야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하며, 제너럴리스트는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를 더해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T자형 인재를 지향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코리아의 1호 데이터 과학자인 차현나 박사는 문과생 출신으로 보통의 인문계 출신에 비해 뛰어난 분석 기술과 데이터 엔지니어에 비해 높은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경험이 스페셜리스트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현재 그는 KT경제경영연구소를 거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데이터랩의 리더를 맡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도 이처럼 전문성과 통섭 역량을 갖춘 IT-BT-한의학 융합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한의융합의학'전공 석·박사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17명이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이 인력들이 '링커'로서 한의과학계 성과 창출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영섭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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