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사랑, 기호에 대한 회의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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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사랑, 기호에 대한 회의 '헤어질 결심'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2-07-07 14:49
  • 신문게재 2022-07-08 10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영화-헤어질결심
이 영화는 사랑을 다룹니다. 그런데 아슬아슬합니다. 금기에 저촉되기 때문입니다. 형사와 피의자 간의 사랑. 역으로 기존의 기호에 대한 회의가 확연합니다. 부부라는 기표(記標)와 사랑이라는 기의(記意)가 대단히 헐겁습니다. 이 영화만으로 보자면 부부라 쓰고 살인 혹은 배신이라 읽게 됩니다. 이런 일은 감독의 전작들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남북한 병사들('공동경비구역 JSA', 2000), 신부와 뱀파이어('박쥐', 2009), 귀족 아가씨와 여종('아가씨', 2016)이 금기를 어긴 사랑에 휩싸입니다.

이 위험한 사랑을 위해 운명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심문과 잠복을 하는 동안 두 주인공 형사와 피의자는 꼼짝없이 한 프레임에 묶입니다. 그리고 대화와 관찰은 교묘하게 관계의 단초가 됩니다. 특히 형사 해준이 몰래 숨어 피의자 서래를 바라보는 일은 히치콕의 고전 영화 '이창'(1954)과 그에 대한 뒤틀린 패러디인 키에슬로프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1988)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체국 직원 도메크가 불우한 여인 마그다를 오래도록 훔쳐보다가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관음증에 대한 놀라운 역발상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영화는 관계의 주체와 타자에 관한 반전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형사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고, 심문하지만 결국 서래의 주체성이 도드라집니다. 따지고 보면 사랑에 빠진 것은 해준입니다. 사랑했기에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도,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서래이고, 해준은 슬프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 '박쥐'의 태주(김옥빈 분), '아가씨'의 숙희(김태리 분) 역시 그러합니다. 타자인 줄 알았던 이들이 적극적 주체로 발견됩니다.

안개가 가득한 가상의 바닷가 도시 이포. 관계는 모호합니다. 오래된 절의 커다란 북을 사이에 두고 해준과 서래가 서 있습니다. 말은 별로 하지 않고 북만 두드립니다. 언어의 억압과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중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이 말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표현으로 소통합니다. 기실 박찬욱 감독은 줄곧 매끈하게 봉합된 언어적 기호의 허위와 헐거운 실체에 대해 비웃어 왔습니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 분)에 대한 형벌로 혀를 자르는 것,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서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 언어적 소통의 부정확, 부조리함을 보여준 것이 그러합니다. 익숙한 기호에 대한 그의 회의는 낯설고 도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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