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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행은 벌써 식당에 와 있단다. 발을 동동 구르는데 버스는 거북이 걸음이다. 버스에서 내려 식장으로 달려가 축의금을 내고 곧장 식당으로 갔다. 아차! 신부 얼굴도 안 보고 와버렸네. 식당에 들어서니 하객들이 와글와글했다. 만나기로 했던 일행을 간신히 찾았는데 남성 두 명도 있었다. 한 분은 안면이 있어 정중히 인사하고 앉았다. 독자권익위원이었다. 또 한 사람은 전직 언론인이었다. 나이 지긋한 독자위원이 반가워하며 썰을 풀었다. "아 내가 '식탐' 팬이여. 나올 때마다 꼭꼭 읽어본다구. 그런데 실제 보니까 젊네. 사진은 한 5,60대인 줄 알았는데. 사진 바꿔요. 안경 벗고 새로 찍어 올려봐." 나를 비롯해 다같이 와 웃었다. '언니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이참에 우리 동네 김 여사처럼 성형 대개조 해봐? 연예인들도 나이를 먹을수록 거꾸로 젊어지는 걸 보면 의학 기술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그나저나 사진이 문제가 아니었다. 온갖 화려한 음식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접시에 초밥을 빠르게 담았다. 별별 종류의 초밥이 다 있었다. 이 많은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회사 후배가 인사해도 건성으로 대답할 뿐, 눈은 탐욕스럽게 먹을거리를 좇았다. 접시가 금세 수북했다. 자리에 앉아 초밥을 정신없이 입에 욱여넣었다. 매콤한 겨자 향이 코를 찔러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느정도 배가 부르자 음식에 대한 품평이 발동했다. 생선에 비해 밥의 양이 많아 씹을 때 살점의 식감이 덜한 걸? 뭐 전문 일식집이 아니니까. "술을 못한다면서요? 술에 대해서도 쓰면 좋을텐데. 술도 자꾸 마시다보면 늘어." 한담을 나누면서 술을 홀짝이던 독자위원이 아쉬움을 표했다.
접시를 싹 비우고 두 번째 접시를 들고 순례에 나섰다. 아까는 먹이에 굶주린 하이에나였다면 이번은 시베리아 호랑이처럼 위엄을 갖추고 여유를 부리면서 어슬렁거렸다. 먹음직스런 갈비가 눈에 들어왔지만 이날은 왠지 안 당겨 회 코너로 갔다. 연어는 알겠는데 다른 건 무슨 생선인지 몰라 직원에게 물었다. "그건 한치고 이건 광어고…." 내가 신이 나서 계속 물어보자 분주히 일하던 중년의 여성 직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바빠 죽겠는데 왜 자꾸 꼬치꼬치 물어본대? 먹기나 할 것이지.' 머쓱해서 입을 다물었다. 순간,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던 커플을 또 만났다. 어? 보라색 꽃무늬 원피스, 어? 호피무늬. 시절인연이 따로 없었다.
잔치국수도 맛나고, 추앙하는 수프도 있고 오랜만에 포식했다. 세 번째 디저트 접시를 들고 오자 나의 일행들이 박수를 쳤다. "역시 식탐가네." 달달한 망고 아이스크림과 초코케이크와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나니 더 이상 들어갈 구석이 없었다. 꺼억. 트림이 절로 나왔다. 한 접시 담아온 약식과 팥떡은 손도 못 댔다. 가방을 열어 봉지를 꺼내 떡을 주섬주섬 담았다. 남은 음식 싸올 요량으로 준비한 거였다. 아, 나는 왜 음식 앞에선 이성을 잃을까. 이놈의 식탐은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여러분, 흉보지 마시길.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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