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진 교수 |
지난 70여 년간 이룩한 현대 중국 고고학의 연구 성과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전문가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아왔다. 동아시아에 정착한 최초의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에 관한 새로운 증거가 계속 확인됐고,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전 세계로 진출로 호모 사피엔스에 관한 구체적 자료도 중국에서 속속 발견됐다. 서아시아의 밀·보리 농사와 별개로 세계 최초의 벼농사와 조·수수 농사가 남중국과 북중국에서 각각 출현,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는 고고학 자료는 동아시아 문화사의 혁신과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성과다.
또한 상주 시기의 청동 문명은 토제 거푸집을 이용한 의례용 그릇의 대량 제작과 사용이란 점에서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업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선사 문화와 고대문명의 중요성과 그 위상은 세계 고고학과 역사학계에서 그만큼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일당 독재 체제를 수십 년간 지속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총서기와 중앙정치국이 중화문명 탐원공정에 대해 단체 학습을 했다는 소식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중국과 같은 전제적 국가에서 최고 권력기관이 역사 및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는 건 학문에 대한 일방적 통제와 정치적 이용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은 중화 문명의 영향력과 호소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중국 특색과 중국 풍격, 중국 기백의 문명 연구를 위한 학과, 학술, 언어 시스템을 구축해 인류문명의 새로운 형태 실천에 이론적 도움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중화 문명의 유구한 역사와 인문적 저력을 보여줘 세계가 중국 인민과 중국 공산당, 중화 민족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화 문명에 대한 연구와 그 성과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돼야 하는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 문명에 대한 연구의 구체적 내용보다 더 큰 문제점은 중화 민족, 중화 문명이라는 용어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2억8천만 명에 달하는 한족(漢族)과 약 1억2천만 명의 다른 55개 소수 민족을 작위적으로 통합해 이를 중화 민족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건 개념적으로 어불성설이기도 하지만, 각 소수 민족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문화적·정치적 통합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려고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과거에 중국 문명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주로 황허 중류 유역, 즉 중원 지역 한족의 문화적 특징과 그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중화 민족과 중화 문명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중국 내 과거와 현재 모든 소수 민족의 역사와 문화까지 포함할 수 있게 된다. 징기즈칸은 더 이상 몽골인이 아니라 중화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변질되고, 건륭제는 만주족의 위대한 황제가 아니라 중화 민족의 구성원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00년대 초 일련의 역사 공정을 통해 중국 동북 지방과 신장 위구르 지역, 서남부 티베트 지역의 역사, 고고학, 문화를 중국사의 범주에 강제로 편입하려고 시도했다. 중국 공산당이 단체 학습을 할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한 '중화 문명 탐원 공정'은 중국의 모든 소수 민족과 변경 지역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중화 문명'이라는 작위적 개념 안에 포함하려는 의도가 담긴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인 중국 공산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후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그 결과가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돼 있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학문적 논의와 토론, 평가는 중국 내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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