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견지망월(見指忘月), 이정의 '문월도(問月道)'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견지망월(見指忘月), 이정의 '문월도(問月道)'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2-07-02 11:0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종종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한다. 그것은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에서 비롯된다. 안목은 살아온 경험과 정보를 통해 형성된다. 알고 분별하는 능력으로 어떻게 보면 흐름에 동승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 외에는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사회나 역사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논어 자한편에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해서 후진을 두려워해야 한다 했다. 그 미래가 변화무쌍하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어디 후진뿐이겠는가? 선배는 그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사람이다. 옆에 있는 사람의 도량과 미래를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겸손하고 상호 존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함에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으로 종종 착각한다. 그로인한 병폐도 만만치 않다. 좋은 예제가 후고구려 궁예(弓裔, ? ~ 918)의 관심법이다. 2000년 KBS사극 '태조왕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도 종종 인구에 회자된다. 궁예는 신라의 승려였다. 신라가 몰락하자 898년 세력을 모아 스스로 왕위에 올라 후고구려 시조가 된다. 구세제민(救世濟民)이 꿈이었으나 완전한 국가체제를 갖춰보지도 못하고 제거된다. 뒤이어 등장한 고려가 부정적으로 서술한 측면도 있겠으나, 폭군으로 서술된다. 학정(虐政)의 도구중 하나가 바로 관심법(觀心法)이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두 안다는 것이다. 자기마음대로 상대를 재단하여 생사여탈(生死與奪) 하였다. 심지어 부인이나 두 아들까지도 죽였다. 자기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만연하고 있다. 세상을 지레짐작하거나 함부로 재단한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수많은 억측과 견해가 따라다닌다. 그로 인한 혼란과 사회적 손실이 얼마나 큰가? 있지도 않은 일을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 왜곡 해놓고, 추측, 추정한다 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몇 년간 특히 심했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세상을 뒤집어 놓고 법적으로 하자 없다고 털어버리면 될 일인가? 늘 강조하지만 법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도덕적 심판이요, 역사적 심판이다. 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SNS가 일반화 되면서 너나없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패망의 길로 치닫는 거짓사회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궁예는 미륵불이라고 자처하며 폭군이 되었다. 미륵불은 미래에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 아닌가? 미륵이 구현할 이상향은 용화세계이다. 불자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 용화세계는 부처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용화세계에 합당한 노력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드려진다. 모든 중생이 진리에 눈 뜨는 세상 아닐까? 열심히 공부하고, 옷과 음식을 남에게 베풀며, 몸과 마음을 닦아 공덕을 쌓으라는 말 아닐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 아닐까, 본질이 아닌 것으로 혹세무민하지나 않는가, 필자 역시 늘 경계한다. 옛 성현의 말을 되새기다 보면, 세월이 무수히 흘러도 왜 이리 변화가 없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구제불능의 인간세상 속성일까? 본질을 보지 못하는 탓일까?

구링ㅇ
문월도, 이정, 지본담채, 16.0×24.0cm,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은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6)의 <문월도(問月道)>이다. <고사망월도(高士望月圖)>라고도 불린다. 탄은은 세종의 현손으로, 묵죽화에 있어서 유덕장(柳德章)·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힌다. 묵란, 묵매에도 조예가 깊었다.

탄은의 <문월도> 2폭이 전한다. 다른 하나는 나무에 앉아 나무를 가리키는 그림이다. 보이는 바와 같이 그림 왼쪽에 그믐달이 떠있고, 바위에 걸터앉은 사내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없는 더벅머리에 맨발이다. 관자가 탈속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얼굴은 천진난만한 환희로 가득하다. 도를 깨우친 희열로 보인다.

달을 보라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견지망월(見指忘月) 고사를 그린 것이다. 손가락만 보고 달을 잊었다. 본질은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제로 실체를 가리는 것을 말한다. 불가에 전하는 말로, "진리는 하늘에 있는 달과 같다. 문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한다.

주역 계사전에,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할 수 없어 형상을 세워 뜻을 전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 立象盡意)는 말이 있다. 하나의 그림이 더 많은 말을 하고 뜻을 전하기도 한다.

사회나 개인을 모함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소통의 최대 걸림돌 아닐까? 미륵불로 자처하면서 혹세무민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온라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