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철 변호사 |
A는 남편 B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내연관계인 B의 아내의 동의를 받고 집에 세 차례 들어갔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봤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공동거주자인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면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인 '주거의 평온'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년 9월 대법원도 이러한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37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다. 물론 이에 대하여 대법관 2명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은 "외부인이 다른 거주자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갔더라도 부재중인 거주자가 출입을 거부했을 것이 명백하다면 부재중인 거주자의 주거에 대한 사실상 평온이 침해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였으나, 대법관의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간통이 배우자의 애정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을지언정 형벌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고, 그로 인해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위 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간통죄 폐지를 반영하고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소개하는 작년 12월 대법원 판결은 어떤가. 30대 남성 C씨는 2018년 10월 SNS를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 D군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출입문을 통해 D군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과 2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미성년자 아들과의 동성애를 위해 피해자의 주거에 들어간 행위는, 다른 주거권자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주거의 평온을 해하였다고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라며 C가 D군의 아버지의 주거평온을 해쳤다고 판단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다르게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거주자의 주관적 사정만으로 바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부재중에 출입문을 통해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피해자의 주거지에 들어갔고, 달리 피고인이 피해자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형태로 주거지에 들어간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선 판결은 부부가 각각 공동거주자임을 들어 주거침입이 아니라고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으나, 나중 판결은 미성년자도 공동거주자로서 그 미성년자의 허락으로 들어갔으니 부모의 추정적 의사에 반해도 주거의 평온을 해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인데, 다소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판결 모두 배우자 또는 부모가 없는 사이에 다른 거주자의 허락으로 들어온 경우인데, 배우자나 부모가 있었더라도 주거의 평온을 해치지 않았다고 볼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 경우에도 평온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될 수 있으므로, 이제 주거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퇴거를 명하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퇴거불응죄로 고소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밖에 올해 3월에는 음식점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러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주거침입으로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1992년 대선 전, 정부 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려 한 사실이 도청을 통해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서는 도청이라는 범죄 목적을 숨기고 음식점에 들어간 것은 주거침입에 해당하고 판단하여 처벌했는데, 대법원이 25년 만에 종전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이렇듯 변경된 판례는 바뀐 사회를 반영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그 변화를 가속시키기도 할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주거의 평온을, 우리의 가치관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까. 지금 당신의 주거는 평온한가?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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