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달빛 소나타'의 화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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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달빛 소나타'의 화분대

  • 승인 2022-06-24 05:1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35년 전 충남고등학교 이은섭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스승의 날 즈음하여 83년도 3학년 2 반이었던 우리 반 학생들이 반창회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5월 14일 시간 좀 내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약속일정 잡힌 것도 없는 데다 보고 싶은 제자들이라서 흔쾌히 응낙을 했다.

제자들을 만난다는 생각에서인지 동심 같은 마음이 생겨 기분이 들떠 있었다.



초대받는 자리지만 술 한 병 들고 가 아끼는 제자들과 술 한 잔씩 나누고 싶었다. 그래, 전에 했던 것처럼 서부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한산소곡주 큰 병 하나를 갖다 놓았다.

약속 당일, 평생학습관 할머니들 수업이 있어 막 나가려던 참인데 전화가 왔다.

오후 5시 30분에 제자가 승용차를 가지고 날 태우러 온다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었다. 복진이 제자가 차를 가지고 왔다. 가면서 얘길 하다 보니 모임장소는 과거 개그맨 출신이 운영하는 수통골 근처 '달빛 소나타 '라는 곳이었다.

도착하여 얼마 있으니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지난해 만났던 제자들이었지만 졸업 후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거기 나온 제자들은 학창시절 그 얼굴들이 보고 싶은 생각이 대부분이었으며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온다고 해 놓고 못 나온 제자들도 있었다.

제자들이 종사하는 일들에 관해 얘기를 들어보니 모두가 자랑스러운 제자들이었다.

남다른 목공 재능으로 인정을 받아 각광을 받고 사는 제자, 광주 SK 본부장으로 있는 제자, 판사하다 퇴임하고 변호사하는 제자, 증권업에 종사하는 제자, 개인 사업(인조 잔디) 사장 제자, 건축자재 사장 제자, 법무부 근무 제자, 국정원 소속 북한 전문 박사 제자, 경제기획원 외환관리 업무를 맡은 제자, 방재청 근무 제자, 가스공사 에너지관리공단 사장 제자, 회계사로 일하는 제자, 방송국 노조 위원장 피디 제자. 특수수사대(경찰) 대장 제자, 중소기업 기획실 근무 제자, 양봉업으로 꿀을 따는 제자, 학원장을 하는 제자 등등 각계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일들로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제자들을 볼 때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이 나보다 훌륭한 삶으로 인정받고 칭송받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마냥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준비한 식사를 하면서 술잔이 오가는 가운데 마냥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간 한산소곡주를 주전자에 담았다.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옛날 골동품 같이 숨겨 놓았던 이야기들을 들어가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달빛 소나타 '의 음식상 위에는 맛있는 석갈비보다 더 소중한 골동품 같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술잔에 묻어 나오고 있었다. 고교시절 야간 자습 때 땡땡이치다 혼났던 얘기며, 담배 피우다 들켜 주의 받고 화장실청소까지 했던 얘기, 입시 상담 때 옥신각신하며 서운했던 얘기, 등등 수십 년 간 꾸불쳐 놓았던,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얘기들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나오며 또 다른 술안주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자리는 만나서 식사나 하고 술만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다. 분명 거기는 정을 나누며 우정이 오가는 자리였다. 충고 모교 사랑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충고동인지 '청운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자랑스러운 충고인의 기백과 단합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자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곳 '달빛 소나타 '의 음식상 불판 옆에는 특별 메뉴는 아니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친구들 잘 되는 걸 보고 기뻐하는 송무백열(松茂栢悅)의 진정한 우정도 있었다.

형제자매 간에 우애하고, 가족 간에 화목하며, 부모님께 반포보은(反哺報恩)을 실천하는 제자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보은하는 마음으로 사는 제자들 같은 생각에 이를 데 없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술의 취기가 한창 올랐을 때 제자 이은섭이 준비한 선물이라며 화분대를 선보였다.

'달빛 소나타 '에 버티고 서 있는 화분대!

그건 바로 지명(知命)의 나이가 훨씬 지난 제자가 나를 위해, 35년 전 옛 담임을 잊지 못해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새기고 다듬어 만들어 가져온 것이었다.

'달빛 소나타 '의 화분대!

목질이 좋은 수입 자재로 제자가 손수 깎고 다듬고 새기어 만든 화분대였다.

가로 90㎝, 세로 120㎝, 좌우 각기 3층으로 화분 6개를 진열할 수 있는 화분대였다. 가슴 벅찬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화분대의 모형도 예뻤지만 그 화분대를 만든 제자의 마음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장원 중에도 특장원, 금메달감 마음이었다.

천만 송이 억만 송이 꽃으로도 안 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아름다움이, 음수사원(飮水思源)하는 마음이, 화분대에서 숨 쉬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지명(知命)의 나이를 뒤로 한 제자가 35년 전 은사를 챙기고 생각하는 그 마음!

천만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온혈가슴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삶의 표상이었다.

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제자 마음이, 어떤 보석에서 나오는 광채보다도 더 빛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달빛 소나타 '의 화분대!

거기에는 세상 제일가는 아름다운 마음이,

세상 둘도 없는 보은의 마음이, 천사의 마음이,

충고인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어, 온혈가슴으로 숨 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지구촌 으뜸가는, 제자의 아름다운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는 화분대였다.

솔향 남상선 /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수필가

남상선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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