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체로 무뚝뚝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나는 과연 훗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솔직히 다정다감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 안에 있는 큰 사랑의 마음을 감추지 말고 주위 사람에게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 사랑의 마음을 십 분의 일만이라도 겉으로 표현해도 모두가 행복해질 듯하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표현하자. 그 어떤 관계보다 가족 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가정에서 보이는 소통 방식이 밖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가족관계에서 작용하는 소통 원리는 다른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인과 전화 통화를 마쳤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넘게 통화를 한 것 같다. 나는 통화를 용건 위주로 아주 짧게 하는 편이다. 보통 2~3분을 넘기지 않고 길어야 5분 정도다. 꽤 자주 보는 사람인데,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만나거나 통화를 하면, 안부는 물을 수 있을지언정 '수다 떨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오히려 매일 전화하고 매일 이야기를 나눌 때, 할 말이 계속 생긴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어떤 분은 구십이 넘은 어머니와 매일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 통화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놀라움과 함께 그 효심(孝心)에 탄복했다.
안부 전화는 대략 짧고 어색하게 끝날 때가 많다. 대부분 "언제 한 번 시간 내 만나자."고 지키지 못할 기약을 하며 끊는다. 각자의 일상을 갑자기 미주알고주알 꺼내기도 그렇고, 상대방에 대해 새삼스럽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 또한 편치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다 전화는 항상 시간이 부족해 아쉬움을 남기고 끝날 때가 종종 있다. 마치 흥미진진한 연속극을 보듯 각자 상대방의 삶에 대한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시간 남짓 실컷 얘기를 나누고도 마지막에는 "그래. 이만 끊고 만나서 다시 얘기 나누자."라고 하지 않던가.
과거엔 수다가 여자들의 민폐짓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가정주부나 고립된 환경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수다 욕구가 강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옅어지면서 남자들의 대화도 만만찮은 수다력을 과시하고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남자들 수다가 더 심하다. 이젠 수다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재발견되었다고나 할까. 실제로 호프집이나 길거리에서 목청껏 떠드는 남자들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귀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만큼 아직 나에겐 남자 수다는 어색하다.
앞으론 가까운 사람과 더 자주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산책도 하며, 저녁엔 술 한잔 나누면서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지. 사람은 누구나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의미가 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는 것을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 더는 부끄러워하게 될 일을 하지 않으며, 부단히 자신을 성장시키며 살아가야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일상에 감사하며 맡은 바 소임(所任)을 다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데 있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것과 가까운 이웃에 늘 귀를 기울이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데 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이웃과 사회공동체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배려를 실천하며 사랑을 더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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