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김치찌개에 식후 커피 한잔이면 만원을 훌쩍 넘겨버리는 탓일까? '한끼 1만원' 시대를 맞은 직장인들에게 이제 도시락은 강요된 선택이 됐다. 그들의 잦은 발걸음 덕에 편의점이 때아닌 호황이다. 작년부터 들썩이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급기야 13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너도 나도 부자를 꿈꾸며 월급 쪼개 넣어둔 주식계좌는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 마냥 처참하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원망하고 코로나 극복을 내세우며 대책없이 돈을 풀어 댄 정부를 원망해보지만, 별수 없다.
"장보기 겁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푸념과 함께 짠물소비는 이제 생존전락이 됐다. 편의점 구독 쿠폰을 활용해 한끼를 해결하고, 대형마트에서는 양파 1개, 감자 1개 등 딱 필요한 만큼만 사고, 배달서비스 대신 발품을 판다. 서글픈 신조어도 생겨났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뜻하는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따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음식을 해 먹는 다는 뜻의 '냉파(냉장고 파먹기)족', 아예 장보기를 포기했다는 '장포족'까지, 그 속에 담긴 현실이 처절하다.
고물가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은 경제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직격탄을 맞은 건 언제나 그렇듯 경제 취약층.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가처분소득 가운데 식품비가 차지한 비중이 42.2%에 달한다고 한다. 세금이나 의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하고 남은 돈, 즉 근로자 손에 쥐어진 정말 먹고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 절반가량을 식비로 쓴 셈이다. 이는 소득 상위 20%의 평균 식비 비중(13.2%)의 3배가 넘는 수준이고, 전체가구 평균 18.3%보다도 훨씬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을 수치화한 '경제고통지수'도 2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벼랑 끝에 선 서민들의 밥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회는 24일째 멈춰서 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서로 가져가겠다며 여야가 극렬히 대치하며 뜻하지 않은 휴가(?)가 생긴 탓일까? 매월 1200여만원의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면서 국회의사당 대신 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6월과 7월 중에만 58명이 해외출장을 갔다 왔거나 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는 국회 재적의원의 20%에 해당된다. 물론 이유는 있다. 외국 의회 관계자와 면담이 있어서, 입법 연구를 위해서…. 인사청문회부터 민생 입법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성난 민심에도 아랑곳 않는 대범함.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그게 현안이냐"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두고 내뱉은 한 정치인의 발언이 민망하고 또 민망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몰아닥친 '경제 재난'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는 묘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 안하는 국회', '흡혈국회'라는 낙인에 부끄러움조차 못 느껴서야 되겠는가.
"지금 국민들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다"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 초당적으로 대응해달라는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 그 당부가 제발 그들을 움직여 주길 바랄뿐이다.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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