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온몸에 흐르고 있는 박인석 지휘자의 국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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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온몸에 흐르고 있는 박인석 지휘자의 국가관

장주영/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수필가

  • 승인 2022-06-21 10:3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022년 6월 19일 오후 7시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한국인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 42회 정기연주회 '잊혀진 우리의 영웅 학도병 6·25전쟁 제72주년 Korea 힐링 호국콘서트'.

"1950년에 6?25전쟁이 났습니다. 공부를 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겨우 이삼일 총 잡는 연습을 하고, 제 키보다 길고 육중한 M1총을 메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이들을 학도병(學徒兵)이라 합니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90세 전후가 되었을 학도병 어르신들이 138명 가량 생존해 계시다고 합니다. 그분들에게 머리숙여 경의를 표하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중략)… 한국의 음악인이 한국의 음악을 지키지 않으면 사라질 위기에 있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오직 한국의 음악만을 연주합니다. 서양클래식에 밀려 재정적 후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상을 펼칠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연주가 끝날 무렵 지휘자 박인석은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연주는 서정적이고 한국적인 가락의 실력파 국내 작곡가인 이신우, 김종덕, 오숙자, 정동희, 이수은, 박범훈, 심진섭의 클래식 창작곡에 작사가인 이한숙, 김여초, 최명우, 표재순의 민족 정서가 듬뿍 담긴 시어 (詩語)가 융합되어 창조된 멋진 공연이 펼쳐졌다.

교향시 '백제'의 관현악연주, 국내 교향곡 '영웅'의 태평소 박성휘 협연, 소프라노 신향숙과, 바리톤 정명수가 부르는 창작 오페라 가곡인 오대산, 잡고있으면 머물 텐가, 아리랑길, 무심한 하늘, 서정적인 우리 동요가락이 관현악에 숨어 있는 '동물 주제에 의한 환상곡' 초연,

사물놀이 4인조 꽹과리 금현옥, 징 송진수, 장구 서현아, 북 양승호의 미친 듯 두드리는 신들린 몸놀림이 가미된 관현악 협주곡'놀이(Play)', 한국기상곡 등이 연주됐다.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80여 명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의 한국음악전문 관현악단이다. 한국음악에 대한 국내 클래식업계의 외면과 대중의 호응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렇게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음은 바로 박인석 지휘자의 굳은 국가관과 애국심의 발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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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지휘자와 메시야 필하모닉 단원들
클래식 모든 공연이 생명이 있는 듯 살아있었다. 여느 때처럼 슬쩍 잠도 오지 않고, 오히려 심장이 두근댔다. 아름다운 관현악 선율이 전체를 받쳐주면서 태평소, 장구, 꽹과리, 북, 징 같은 국악이 가미되니 신명이 났다. 연주마다 한국적인 서정적 가락 속에 사랑, 슬픔, 한, 우정, 용기가 각각 묻어났다. 귀만 행복한게 아니었다. 눈까지 즐거운 것은 박인석 지휘자님의 역동적인 지휘때문이었다.

음악에 빠져들게 하는 환상적 몸놀림은 모든 연주의 무용수 같았다. 게다가 그 환상적 머리카락은 금빛이 감도는 갈색 단발에 샴푸광고에 나오는 완벽히 찰랑거리는 직선의 생머리였다. 머리에 가느다란 지휘봉이 수 만개가 붙은 듯 머리카락들이 제각각 움직이며 음악에 맞춰 정확하게 물결쳤다. 지휘자의 머리카락도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만 봐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게다가 어깨도 들썩들썩, 두 발도 모은 채 깡충깡충, 양손이 정확히 특정 악기를 지목하며 맥을 잡아주는 지휘. 또 곡마다 시작하기 전에 기를 모으는 심층 연기를 보여준 카리스마와 여백의 미도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클래식 감상 에티켓을 손짓으로 일깨워 주기도 하는 등의 제스처도 멋졌다. 후원해준 내빈들 소개에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하면서 외국 관객과 즉흥적으로 소통하는 글로벌한 능력까지 무대 집중도를 최고로 높였다.

처음에 그는 제비처럼 무대위로 날아 들어와 애국가를 지휘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우린 정숙해지고 주변이 정돈됐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국의 음악을 감상하면서 점차 감정이 고조된다. 그리고 피날레 즈음 지휘자님의 스토리텔링에 맞춰 느닷없이 객석에서 '이 자리에 학도병이 왔다'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그 학도병에게 향하는 뜨거운 박수 갈채 속에 관객과 연주단은 감동의 물결 속에 다시 한번 격정적인 하나가 되어 사명감 넘치는 앵콜곡으로 마무리했다.

더 멋졌던 것은 이날 대전도시과학고등학교(교장 박인규) 전기과 1학년 학생 안현우를 필자의 가족들과 함께 데려간 것이다. 불편할 수도 있는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용기있는 학생, 잘 성장해가는 멋진 청소년인 현우가 대견하다. 사회적 소통, 문화적 정서, 인생의 통찰을 주는 낯설고 새로운 공간으로의 노출을 주고자 했다. 배움과 힐링의 시간이 되기를 바랬다. 이 시간 자랑스러운 우리 현우의 핏줄에도 72년 전 학도병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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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와 함께
현우에게 무엇이 인상 깊었는지 물었다.

"장구와 북이 기억에 남아요. 선생님 그리고 학도병 존경해요. 역사에 무관심한 채 살았던 것이 부끄러워요."

"그랬구나. 우리 저 지휘자 분과 사진 찍자."

100년도 안 된 우리의 역사. 식민지, 전쟁, 분단, 폐허된 나라를 살리는 새마을 운동...

우리나라의 힘들었던 시절을 안다는 것. 애국심을 사명으로 심어준다는 것. 동기를 심어주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래의 교육인 것이다.

박인석 지휘자의 애국심에 기인한 학도병을 기리는 호국 공연은 오늘의 17세 소년 안현우에게 옮겨붙었다. 단 한 명이라도... 현우 가슴에 작은 불꽃 피워내 나라를 생각하는 성인으로 자라길 바래본다.

설동호 교육감이 이끄시는 대전교육의 슬로건이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융합교육 완성'이다. ▲문·예·체 체험 중심 인성교육 ▲창의성을 키우는 융합교육 ▲대전형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조성 등 3가지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

미래교육자들은 하드웨어적인 시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의한 대면 교육, 스토리텔링을 통한 역사적 교훈, 예술로써 감성을 자극하는 창의융합교육이 효과가 큼을 알 것이다. 이미 좋은 컨텐츠가 존재한다. 그게 바로 박인석 지휘자가 추구하는 사상에 기인한 음악세계인 것이다. 올해 가을 11월에 호국콘서트를 또 준비한다고 하니 나라의 꿈인 청소년, 미래의 학도병들로 가득채운 만석을 기대해본다.

장주영/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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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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