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
언제부턴가 하루를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말은 메모라지만 실상은 사진을 찍는다. 영상의 시대에 이미지로 남겨두니 훨씬 생생하고 설명이 필요 없다. 식사가 나올라치면 식사 전 기도처럼 짧은 의식을 치른다. 가끔 가족식사라도 하게 되면 습관처럼 사진을 찍어대는 아이들을 타박하며 은연중에 배운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핸드폰을 새로 장만할 때면 저장능력을 눈여겨본다. 이미 핸드폰에는 1만장 이상의 사진과 동영상이 있지만 가득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클라우드식 저장공간까지 합치면 그 몇 배를 넘기게 되는데, 세상에 부자가 따로 없다.
모든 수업을 대면강의로 다시 시작했던 지난 3월, 벌써 네 번의 학기를 원격강의로 해 온 터라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마스크 쓰는 것은 변함이 없었고 학생들과의 거리는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인간은 타인과의 만남과 소통으로 살아간다. 생존과 삶을 서로에게 기대는 이러한 특성은 도시라는 특별한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 대표적 공간이 대학이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며 '들판'이라는 의미를 지닌 캠퍼스(campus)가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의 이동공간으로 더욱 확실하게 변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 첨단 디지털 기기를 통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생각과 경험을 나눈다. 이들은 한 순간도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러 공간을 이동한다. 어느덧 정주식 대면강의만 고집하지 않고 교수자와 학습자를 연결하는 다양한 첨단수단을 새롭게 찾아가는 것은 코로나가 세상에 던져 준 선물상자를 여는 설레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인류 역사는 비대면 방식의 소통을 지향해 왔다. 과학이 앞장섰다. 종이에 쓰는 편지, 전선을 통하는 전화, 인터넷을 통한 이메일, 스마트 폰을 통한 화상전화, 특히 SNS는 대화와 소통을 폭발적으로 확대시켰다. 그래서 최근 2년의 특별한 경험의 시간은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를 향해 단숨에 달려가기 위한 마지막 숨고르기처럼 값지다. 100년도 더 걸릴 것 같았던 원격진료가 일부 가능해지고 원격강의 역시 일시적이나마 교육현장에서 전면 허용된 것은 어쩌면 변화에 주저했던 우리사회에 던져진 새로운 희망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자리 잡아가는 직장문화를 고려한다면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을 교육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편의성과 신속성을 추구하며 유목민적 성향을 지닌 학습자를 이제는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마스크가 어느덧 나의 내밀한 표정을 감춰주는 또 하나의 복장이 되었듯, 코로나로 이미 변화된 일상을 모두 한순간에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교수와 학생들은 굳이 캠퍼스에 모이지 않고도 함께 학습할 수 있는 방식에 익숙하다. 공간이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이미 캠퍼스와 강의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고의 공간과 생각의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멀티플레이어가 된 세대들에게 한 공간에서 하나의 일에만 집중하도록 교육하고 지식의 저장공간을 늘리는 일에만 골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소형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장 빨리 끌어올 수 있는 이들에게 다분히 암기능력에 치우친 평가를 고집하는 것도 한계에 왔다. 암기능력의 중요성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평가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새로운 세상의 지식을 담는 공간은 인체 말고도 메모리라는 이름의 새로운 저장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대전자치경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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