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이제 사람들은 SNS를 통해 시공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한다. 개개인이 '1인 미디어'로서 발언권을 지니기 때문에 다양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정보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다 보니 거짓 판별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가 확산되는 현상을 '인포데믹'이라고 부르는데,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다,
코로나-19가 발발했던 초기 상황이 떠올려보자. 당시 바이러스 확산 원리와 치료법에 대해 온갖 인포데믹이 즐비했다. 심지어 팬데믹 자체가 가짜라고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의료 분야인 만큼,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는 컸다. 마땅히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할 과학 내용마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가짜과학'은 계속해서 온라인상 유통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직접 해명에 나서면, 도리어 은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미 공고화된 오해를 해소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자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2020년 '네이처'에 실린 한 논평이 그 실마리를 제공해 소개하려 한다. 바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마이클 블래스트랜드 등이 쓴 '증거소통을 위한 다섯 가지 규칙'이다.
여태 과학자들에게 요구된 소통기술은 웅변가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적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사학은 문장과 언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해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설득하는 기법이다. 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로 쉽게 풀어내 청자의 관심을 끌어낸 후,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인포데믹이 만연한 현시점에서 더 이상 수사학적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신, '증거소통'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내세운다.
먼저 증거소통은 설득이 아닌 '전달'을 강조한다. 과학적인 사실은 물론, 말하는 자의 진실한 선의가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며 진심을 전하기 비교적 어렵다. 이를 보완하려면 메시지의 동기, 반대 견해 및 한계점을 최대한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직접 만나지 않은 상대가 무작정 설득하려 하면 오히려 반감이 더 강하게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효과적인 증거소통을 위해서는 균형감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청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구체적인 근거 없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청자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이를 알아차리는 즉시 청자는 심리적으로 화자의 동기와 메시지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세 번째로, 무엇을 모르는지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전문가라고 전체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모른다고만 말하지 말고 아는 범위 내에서 예상되는 결과를 제안해주면 효과적이다. 무작정 기다리면 상대가 불안해할 수 있으니 언제쯤 알 수 있는지 등을 덧붙여 주는 것도 방법이다.
네 번째로, 청중이 비전문가일지라도 증거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증거소통 과정에서 이미 퍼진 '가짜과학'을 미리 살펴봐야 한다. 사전에 청자들이 어떤 부분에 대해 오해할지 미리 예상해 보는 것이다.
얼마 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안전 정보공개 및 소통에 관한 법률(일명 원자력안전소통법)'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원자력사업자를 포함한 정보 생산기관은 관련 정보를 지역 주민 등 국민에게 직접 공개한다. 이전에 비해 정보공개 범위도 크게 확대됐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증거소통의 규칙을 되새기며, 과학자로서 소통하는 법을 새롭게 배워나가야 할 때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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