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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먹을 게 넘쳐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은 밥밖에 없었다. 시골이니까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밥은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밥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뭔가 색다른 주전부리에 목이 말랐다. 유일한 간식거리는 튀밥. 설에 먹고 남은 흰떡을 똑똑 부러지도록 바싹 말려 쌀과 함께 튀기면 최고였다. 500년 된 두 그루의 우람한 정자나무 아래서 놀다가 튀밥장수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동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함성을 지른다. 이 집 저 집에서 자루를 들고 달려나와 먼저 온 순서대로 깡통에 튀밥재료를 담아 순서대로 놓는다. 이런 날은 정자나무 아래가 장터가 된다. 아이들은 들떠서 얼굴이 상기되고 어른들도 덩달아 즐겁다. 다만 한 가지 무서운 게 있다. 뻐엉! 튀밥장수 할아버지가 신나게 돌리던 손을 멈추고 한쪽 발을 기계 주둥이에 올려놓으면 우리는 저만치 도망가 두 손으로 귀를 있는 힘껏 막는다.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다. 사카린을 듬뿍 넣은 튀밥. 추억의 간식거리다.
점심 먹고 난 후의 오후는 고역이다. 졸음은 왜 이리 쏟아지는 지 머리가 모니터를 향해 끝없이 인사한다.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마실 수도 없어 졸음을 쫓을 방도가 없다. 졸린 눈을 치뜨고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리다보면 어느새 5시. 이때쯤 슬슬 허기가 몰려온다. 어느날 편집국장이 과자 한 박스를 사와 하나씩 돌렸다. 편집국장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주의자다. 덕분에 종종 간식거리가 들어온다. 이번엔 '뻥이요'였다. 이걸 먹어본지가 언제였던가. 그런데 이 과자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달콤한 버터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면서 흐느적거리던 뇌하수체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팥방구리 쥐 드나들 듯 손이 봉지 안을 쉴새없이 들락거렸다. 찔깃한 옥수수가 이 사이에서 바숴지는 쾌감으로 스트레스도 확 날아갔다.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들 출출했던 모양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쏘냐.
난 먹는 거에 목숨을 건다. 필 꽂히면 한동안은 그것만 먹는다. '뻥이요' 찾아 출바알~. 퇴근길에 내가 사는 동네 마트에 들렀다. 있긴 한데 사이즈가 훨씬 큰 것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먹은 고만한 크기여야 하는데 말이지. 길 건너 마트에도 없었다. 서너 개의 편의점도 샅샅이 뒤졌으나 짝퉁만 있었다. 어라? 조바심이 났다.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리라. 며칠 후 대형마트로 달려갔다. 헛걸음했다. 회사 건물 1층 마트에도 큰 사이즈 뿐. 난 한번 개봉하면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는 탓에 큰 것은 부담스러웠다. 회사에서 먹은 60g 짜리 딱 그만한 크기여야 했다. 다시 동네 마트에 가서 직원한테 손으로 크기를 그리며 요만한 뻥이요를 갖다 놓을 수 있냐며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글쎄요." 결국 편집국장에게 부탁해서 또 한번 먹었다. 편집국장도 간신히 구했단다. 아, '뻥이요' 찾아 삼만리구나. 공부를 이렇게 했더라면 서울대 문턱을 거뜬히 넘었을텐데.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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