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소장 |
고교 시절 최고의 유망주였던 빈 단장은 선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조기 은퇴 후 오클랜드 구단의 프런트에서 시작해 단장까지 올랐으나, 새 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자금 부족으로 핵심 선수들을 빼앗기고 선수 영입에도 실패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트레이드 협상에서 자신에게 물을 먹인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 피터 브랜드를 부단장으로 앉히고, 그의 머니볼 통계에 따라 다른 팀에서 외면하는 선수들을 영입한다.
그러나 "선수기용은 자기 몫"이라는 감독의 몽니로 영입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서보지도 못하고 팀은 17경기 14패로 시즌 초반을 시작한다. 감독의 방해로 패배가 거듭되는 상황이었지만, 빈 단장은 굴하지 않고 끝내 방법을 찾아낸다. 감독이 주로 기용하는 선수 몇 명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해 자신이 영입한 선수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실패하면 해고될 것이 뻔한 상황임에도 빈 단장은 패배감에 젖어 있는 선수들의 멘탈을 잡아주며 선수 개개인을 세세히 코칭해 드디어 팀은 연승 가도를 달리게 된다.
빈과 브랜드의 조우는 만년 최하위 팀에서 그나마 실력 있는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빼앗긴 최악의 시기에 맞게 된 빈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다.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은 맞게 될 인생의 전환점을 모두가 제대로 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낙담하고 포기하여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오며 많은 사람이 뜻하지 않은 전염병의 파고에 휩쓸려 고통을 받고 있다. 배움이 한창인 어린이들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은 교육 빈곤과 취업 기회 박탈에 더욱 힘들어한다. 오히려 내 연배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부분 가난에 찌들고 서로 부대끼며 커왔지만,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깐 상대적 박탈감은 느끼지 못했던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감염병, 자연재해와 기아 등으로 한순간도 순탄했던 시기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겪는 혼란과 상실감은 자라온 환경이 다른 기성세대가 공감하기 힘든 어려움이기 때문에 더욱 안쓰럽다. 그래도 살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많이 겪어본 기성세대가 방황하는 청년들이 안타까워서 한마디 해보지만, 진심은 전달되지 못하고 꼰대 소리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세대 전체가 겪는 고난뿐만 아니라 각자의 어려움도 기회로 삼아 인생을 역전시키는 터닝 포인트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의미에서 스티브 잡스가 49세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그다음 해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말하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천재의 절절함이 담겨있어 되새겨볼 만하다. 그는 17세에 형편이 어려워서 다니던 리드대학을 중퇴하고 청강한 캘리그래피(서예 문체)가 매킨토시 개발의 기반이 됐고, 30세에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을 때 NexT를 인수해 개발한 기술(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제작)로 훗날 어려운 상황에 빠진 애플로 복귀해 애플 중흥을 이끌었다고 하였다.
그는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때가 터닝 포인트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으나, 현재는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이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준다.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무엇이었던가. 돌이켜 보면 딱히 그런 것 없이 평범하게 살지 않았나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어릴 적 꿈이었던 제인 구달과 같은 동물학자가 되지 않고 공대에 간 것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조그만 텃밭과 나무 가꾸기에 빠진 요즘 "까짓것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지금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문득 든다. 늦었지만 그래도 한참 남아있을지도 모를 미래는 가슴을 따라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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