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성범죄 해결, 남성 역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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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성범죄 해결, 남성 역할 중요하다

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 승인 2022-06-09 16:51
  • 수정 2022-08-03 18:11
  • 신문게재 2022-06-10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손정아 느티나무 소장
손정아 소장.
거리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집안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불법촬영과 성추행, 직장 내 성희롱과 일상적인 캣콜링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성범죄가 넘쳐난다. 온라인환경에서는 익명성이 더해져 구인 구직사이트, 게임사이트에서도 언어적 성희롱, 성적접근과 그루밍이 아동과 청소년에게까지 이어진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온라인 채팅사이트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17세 알바구함'이라고 채팅창에 글을 올리자마자 "같이 놀자", 용돈줄게 만나자", 모텔잡고 지금 데리러 갈게.", "사진 보내면 돈을 주겠다." 등등 친절함을 가장한 성인남성들의 댓글이 넘쳐난다. 실태조사를 할 때마다 1시간 동안 평균 60~70명의 남자 성인들이 앞다투어 접근한다. 물론 이들의 목적은 길들이고 통제하기 쉽다고 여기는 여자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온라인현실은 학교 안과 밖, 가정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이에게 열려있는 만큼 성적폭력의 위험은 모든 아동·청소년의 가까이에 있다.

그뿐 아니다. 티켓다방, 주점, 오피스텔성매매, 안마시술소, 마사지업소, 출장성매매, 온라인 조건만남, 허가만으로 영업이 가능한 각종 자유업종 성매매업소에 이르기까지 겸업형, 전업형 성매매업소로 넘쳐나는 것도 모자라 온라인공간 구석구석까지 성구매후기사이트, 성매매업소 광고 포털사이트가 성 착취 카르텔을 형성해 엄청난 수익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성 산업은 미국 국무부에서 발간하는 인신매매보고서에 '성매매공화국, 여자장사왕국'이라 일컬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2004년에 성매매방지법이 생기면서 성 구매자, 알선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지고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 지원이 가능해졌지만 성 산업 규모가 다종다양하게 확대되고 피해자와 가해자 연령도 저연령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사회적 고민은 진지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오랜 기간 우리 사회는 '성범죄의 원인은 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적 충동 때문'이라며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를, 피해 여성에 대한 낙인을 키워왔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확장을 거듭해온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부추기면서 우리나라는 '성매매/성폭력 강국'이 됐다. 지금도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다양한 여성의 몸이 준비되어 있으니 어서 많이 많이 구매하라"고 자극하고 부추긴다. 성매매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문화는 남성들에게 '성욕은 참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여성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 사물화된 존재니까 쇼핑하듯 돈을 지불하면 폭력적인 성적 행위, 폭행과 폭언, 위협과 모욕 또한 가능하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인권적 인식과 태도, 범죄 행동이 오랫동안 성산업, 성문화라는 표현으로 존재해온 만큼 그 뿌리 또한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의 과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성폭력/성매매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성중심주의와 여성의 빈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권력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성폭력/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평등사회로의 지향점을 놓치지 않는 것, 여성의 몸이 오락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인권 감수성을 키우며 제도와 문화를 바꾸어내는 것이 핵심과제이다. 이를 위해 심화되는 성범죄의 뿌리 깊은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접근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활동은 주로 여성들의 몫이었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해석하고자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증언을 이어갔고 여성폭력의 언어를 만들었고 법과 제도, 인식과 규범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지금까지 성폭력/성매매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여성들의 용기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용기있는 남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라고 말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 여성 폭력에 함께 분노하는 인권 감수성을 가진 남성들의 솔직한 토로다. 필자의 바람은 이러한 남성들이 불편함을 넘어 우리나라의 남성들이 성폭력, 성 착취 가해자로 길러져 온 역사적, 사회적 원인을 남성의 시각과 언어로 가시화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절반의 남성이 왜 성 구매하는지, 외국에 비해 성 구매율이 월등히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남성들의 어떤 경험과 교육이 어떠한 성행동에 영향을 끼치는지, 왜 많은 남성들이 불법촬영의 가해자가 되는지, 성인남성들이 아동 청소년들에게 집요한 성적접근을 일삼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친밀함의 표현과 성희롱을 혼돈하는지 등등 연구 주제는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성행동과 성인식에 대해 남성 당사자들이 연구하고, 토론하고 더 많은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이 많아진다면 해결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성폭력/성매매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지 않은가. 용기 있는 남성 주체들의 관심과 활동을 응원하고 기대한다./손정아 여성인권지원상담소 느티나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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