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채석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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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채석강에서

신영인

  • 승인 2022-06-06 11:08
  • 수정 2022-06-06 12:0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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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모습 / 사진=신영인
이백이 달을 건지려다 빠져 죽었다는 강과 닮아 그 이름이 되었다는 곳, 채석강을 걸었습니다.

詩仙이 전설의 강 속에서 달을 잡을 때, 다 토해내지 못한 시편들도 함께 수장된 것일까요. 지구의 한쪽 얼굴이 강에 빠진 한 수레의 원고처럼 일렁이고 있었지요. 수만 층 편편의 서가에 손을 쑥 넣으면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이백의 시가 잡힐 듯하였습니다.

채석강을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은 수술에서 겨우 회복한 작년 겨울, 생일이었습니다. 나도 가족도 몸과 마음이 여위고 많이 지쳐있었지요. 우리는 벼르고 별러 둥글어진 세상의 끄트머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일억 오천만 년째 쓰고 있는 땅과 물의 경전, 그 닳아진 모서리 끝에 서서 첫 밤을 맞이하는 어린 수도자처럼 우리는 말을 잃었습니다.



한참 바다를 바라보던 샘이가 조용히 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없이 감당해야 했을 여덟 살의 설움을 꼬옥 껴안고 나도 기어이 참아왔던 것들을 소리죽여 쏟아냈습니다.

'지구의 쓸쓸한 등이 거느리고 있는 짙은 그늘'에서 어떤 위안을 얻었을까요. 그날 쓴 일기에는 허만하 시인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

'틈을 주무른다.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더듬는 알몸의 포옹이 만드는 캄캄한 틈.

멀어져가고 있는 지구의 쓸쓸한 등이 거느리고 있는 짙은 그늘.

진화론과 상호부조론 사이를 철벅거리며 건너는 순록 무리들의 예니세이 강.

설원에 쓰러지는 노을.

겨울나무 잔가지 끝 언저리.

푸근하고도 썰렁한 낙탓빛 하늘 언저리.

안개와 하날의 틈

지층 속에서 원유처럼 일렁이고 있는 쓰러진 나자식물 시체들의 해맑은 고함소리.

바위의 단단한 틈. 뼈와 살의 틈. 영혼과 육신의 틈.

빵과 꿈 사이의 아득한 틈.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우울한 원둣빛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의 틈.

외로운 액체를 젓는 스푼.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허만하 <틈> 전문.

다시 찾은 초여름의 그곳에서 지난 날 남긴 부끄러운 방명록을 떠올립니다. '적막한 틈' 어디쯤 그 흔적이 남아 있을까, 혹여 내 눈물이 이백의 시편 귀퉁이에 얼룩을 남겼을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옆으로 이어지는 격포해변에는 작고 예쁜 돌이 많습니다. 채석강의 이 부스러기들은 어느 책장에서 떨어진 말줄임표들일까요. 조약돌 하나의 나이를 가늠해보다 한없이 아득해졌겠지요.

맘에 드는 것 하나를 주워 소용돌이치는 작은 은하수에 하고픈 말을 가만히 넣어봅니다.

그러자 보드랍게 앉은 돌에 나만 아는 표정이 생겨나고 그 얼굴에서 오래 만진 침묵처럼 윤이 납니다.

신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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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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