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 수필가. |
학교나 시골을 지나가다 보면 가끔 현수막이 눈에 뜨인다. 대개 변호사 시험합격이나 경찰 같은 정부 조직의 고위직 승진을 축하하고 있다. 권력지향적 사회는 자리를 역할이 아닌 힘으로 생각한다. 권력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묘약과 같기에 사람들은 그 구심점으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간다. 권력자는 힘을 과시한다.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라도 국회의원의 힘자랑 앞에서는 딱할 정도로 쩔쩔맨다.
500여 년간 지속된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겪고도 붕당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다. 조선 사회는 성리학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지배층은 성리(性理) 근본주의의 세계관에 갇혀 학설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신념의 벽을 세워 편을 갈랐다. 성리 방면에서는 성취한 바가 깊어도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영역에서는 내세울 게 거의 없었다.
사농공상으로 신분이 나뉜 조선 시대는 문자를 독점한 지식인이 정치인이 되었다. 정치를 담당한 선비는 심하게 표현하면 말과 글로만 행세하면서 타자를 압도하는 정치 과잉인 사회를 이끌었다. 직업이 단순하니 출세의 길은 「사서집주」를 달달 외워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유교가 남긴 선비정신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면서 여전히 현재 진형형이다. 끼리끼리 뭉쳐 공동체의 이익을 좀먹는 형태와 한 몸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분투하는 모습 이 그것이다. 언론에서는 정치세력의 공리공론에 사로잡히고 편싸움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사림파의 유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번지라는 젊은 제자가 당돌하게 공자께 농사일 배우기를 청했다. 공자께서는 정중히 사양하고 그가 떠난 후 그를 자잘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소인유'라고 부르며 다른 제자들한테 그런 선비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논어를 공부하면서 이 대목이 늘 마음에 걸렸다. 공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흙수저였기에 온갖 일을 경험했었다. 벼슬길도 가축을 기르는 일로 시작해 토목을 담당하는 자리도 맡았으니 농사일을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농사를 배우고 싶다는 제자를 왜 그리도 심하게 평가했을까. 세습 권력에서 지식인 권력으로 문을 연 성인께서 선비는 학문을 하면서 농사짓거나 기술을 배우라고 했더라면 전통문화는 결이 꽤 달라졌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 마음 풍경도 변하고 있다. 권력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남의 입장을 헤아려줄 줄 아는 사회로 변해가는 듯하다. 유교의 시원인 논어 첫 장에서는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즐겁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배움은 가없는 호기심의 과정이다. 최근 노화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여든이 넘어도 지적인 능력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배우면 뇌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젠 달고 매운 권력의 맛을 찾기보다는 담담한 배움의 맛이 담긴 씨앗을 퍼트려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겠다.
권력 쏠림이 심한 사회는 경직되고 다양성과 포용성이 부족하여 뇌동(雷同)한다.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선진국은 공동체의 지속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나라일 것이다. 지금의 욕망 충족보다는 미래세대의 몫을 위해 새로운 가치로 행동하는 사람, 낮은 곳에서 묵묵히 공동체의 선을 위해 봉사하는 의인, 진정한 배움을 통해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로 꽃피우는 사람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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