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수 교수 |
지난여름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을 온 가족이 시청하며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선전부터 땀 흘리며 긴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TV 중계로 보고 있지만, 마치 현장에서 함께하듯 긴장감은 함께한다. 준결승전, 4강전부터는 긴장감이 절정으로 간다. 심박동수가 최대치로 올라가면서, 동시에 어디선가 숨겨져 있는 나의 애국심이 터져 나와 마음속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마치 4강 대진표 같은 국기가 그려진 모습이 여기, 병실에 있다. 네팔, 몽골,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 국기가 나란히 있는 것 같은, 각기 다른 네 개의 나라 사람들의 이름이 병실 입구에 쓰여있다. 담당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가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른다. 다친 부위도 다양하다. 가슴에 피가 나 관을 꽂은 환자, 머리뼈가 깨지고 머리 안에 피가 나는 환자, 팔다리가 부러지고 신경이 끊어진 환자, 허리뼈와 다리뼈가 부러진 환자… 마치 복싱 4강전 대진표 같은 모습의 병실이다. 사실 당연히 외상 병동에는 있음 직한 환자들의 구성이다. 다만, 이들의 이름을 보면 고개를 한번 더 갸우뚱하게 된다. 'O칠, O펜, OO찬, OO성'. 이름표 앞에 국적을 나타내는 국기를 표기한다면 딱 4강전 대진표와 같을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는 2021년 말 기준 210여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한민족의 나라가 아닌, 미국과 같은 다민족 나라라고 불러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농촌 일손 부족을 해결해주고, 식당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청년들이 서빙 하는 모습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내 거주 외국인을 우리가 하기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인력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와 동행하는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시 그 병실에 있는 환자들 차트를 보니 옆에 붙어있는 표시가 네 환자 모두 산재보험, 자동차보험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사고의 원인은 다들 공사장, 오토바이 등등으로 쓰여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힘들어서 꺼리는, 혹은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불과 몇십 년 전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가 독일 어느 병원 병실에 지금처럼 올림픽 4강 대진표같이 서로 다른 4개 나라 사람들과 아픔 그리고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이름 모를 병원 병실 안에서 'O Kim', 'O Lee'라는 이름으로 치료받았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누구네 아들이 이역만리 독일의 탄광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수십 년 전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파독 광부로 머나먼 이국 탄광 속 석탄 바위에 깔려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우리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우리네 관심이 적은 곳에서 사고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잊을 듯하면 '외국인 노동자 사고'라는 제목의 사회면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는 이상 없어질 수 없는 사고이며 신문 기사 제목인 것이다.
한민족, 다민족이 아닌 함께하는 동료로 생각하며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권역외상센터 의료진 모두는 4인실, 4개국 환자들 모두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있다./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문윤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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