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지방시대의 리더십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지방시대의 리더십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장

  • 승인 2022-05-31 10:26
  • 신문게재 2022-06-0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유재일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장
"별안간 그 육중한 수레 몸체가 움직이더니, 서서히 마차가 올라오며, 수례바퀴가 절반 바퀴자국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숨막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거들어! 마들렌이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왁 달려들었다. 단 한 사람의 희생이 모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짐수레는 여러 사람의 팔로 들어올려졌다. 포슐르망 영감은 구출되었다. 마들렌은 일어났다. 땀이 철철 흐르고 있었으나 얼굴은 창백했다. 옷은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모두들 울고 있었다."

위 인용 대목은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한 단락이다. 장 발장은 몽뢰이유라는 작은 공업도시에서 마들렌이라는 가명을 쓴 채 공장주로 성공해 시민들의 간청으로 시장을 맡게 되는데, 어느 날 마차를 모는 한 노인이 마차가 진흙탕에 빠지는 바람에 바퀴에 끼여 죽을 지경이 되는 상황에서, 탈옥수인 자신을 평생 추적하고 있는 자베르 감찰관에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과 함께 노인을 구해내는 장면을 그린 대목이다.

비록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장 발장은 인간의 위대함의 진면목 뿐만 아니라 시장이라는 리더의 덕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신상에 불리함이 닥칠 것이라는 점을 감수하면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품위를 던졌던 것이다. 이같은 솔선수범의 헌신적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나아가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갖도록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한 때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마들렌상'을 제정해볼 것을 관련 학회와 시민단체에 제안한 바 있는데, 장 발장이 시장이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언젠가는 받아들여질 것으로 희망한다.

오늘 밤 늦게나 내일 새벽녘에는 다시 신임(信任)되거나 새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이 탄생한다(물론 교육감도 선출되지만, 지면 제한으로 논외한다). 즉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 거버넌스(gavernance, 협치)의 두 축인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책임자가 될 사람이 시민들로부터 주권을 위임받는다. 이들은 정부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국회의원과는 법적 지위와 배분 사무 측면에서 다르지만, 주권을 위임받았기에 국민의 대표라는 점에서 대등하다. 또한 이들은 공적 영역의 최전선에서 시민의 삶을 지켜내고 향상시키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시민의 공복(公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선출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진정으로 강건한 '히어로'(hero, 영웅)의 탄생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들이 진정한 히어로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떻게 보면 히어로는 탄생과 창업이 아닌 업적과 공적에 의해 정해진다. 이와 관련해 외람되지만, 당선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드리고자 한다.

먼저 올 초 이뤄진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 및 시행에 따른 지방자치 2.0시대를 맞아 지역이 주체가 된 지속가능하고 상생적인 지역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일 세종시에서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새 정부 지방시대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지역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많은 권한을 이양하고 지역맞춤형 패키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중앙정부의 정책을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공동체에게 주어진 운명(Fortuna)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행정적 미덕(Virtus)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의 리더들에서 발견되는 훌륭한 미덕이 공공선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 '열정'(passion)과 통찰력이나 판단력과 같은 안목의 원천인 '사려깊음'(prudence)임을 늘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통합적이고 창의적이며 글로컬(glocal)한 리더십을 펼쳐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당선을 축하하고 낙선을 위로하는 뜻에서, 개인의 자유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헌신했던 영웅적인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3번 '에로이카'(Eroica, 영웅적)의 동영상을 선물로 드리니 음미해 보실 것을 기대한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