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훈 계룡세계軍문화엑스포조직위원회 사무총장 |
계룡세계軍문화엑스포를 준비하면서 든 생각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볼 수 있는 행사에서 전투식량의 역사가 문득 궁금해졌다.
전투식량은 보급이다. 삼국지에는 보급을 활용해 적을 물리친 사례가 나온다. 서기 200년 중국 후한 말, 조조는 화북 2대 세력인 원소와 전투를 벌인다. 조조가 거느린 군사는 7만 명인 반면, 원소군은 70만명에 달했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조조는 원소군의 식량 저장고 위치가 오소라는 것을 알아냈고, 즉시 공격했다. 식량이 모두 불타버린 원소군은 먹을 것을 조달하기 어려웠고, 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조는 곧바로 원소군을 공격해 승리한다.
전투식량은 군인들이 전투 중 간편하게 지니고 다니다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투식량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고대와 중세에는 육포나 염장고기(물고기 포함), 견과류, 말린 과일, 딱딱한 건빵(Hard Tack), 쉽비스킷(Ship Biscuit) 등이 있었다.
중세시대 전투식량 중 하드택(건빵)은 현재 국군에 보급되는 부식 즉, 건빵과 같은 과자가 아니라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돌덩이처럼 딱딱해질 때까지 불에 수 차례 구워 만든 음식이다. 만든 직후에는 씹을 수 있지만, 몇 달, 몇 년 씩 숙성하면 너무 단단해 음식인지 벽돌인지 구분이 안 됐다고 한다.
몽골제국은 '보르츠'를 만들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약해 보이는 가축을 잡아 살코기만 골라 바짝 말리고 빻아 자루에 담았다. 몽골군은 이 보르츠를 따뜻한 물에 풀어 먹었다. 유럽에서도 보르츠를 전투식량으로 도입하려 했는데, 누린내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근대적인 전투식량이 등장한 것은 나폴레옹 시대였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에서 보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 때문에 전투식량 개발에 힘을 쏟았다. 1809년 프랑스 정부는 대량의 음식을 값싸게 보존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1만 2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열었다. 이 때 니콜라스 아페르라는 인물이 병 안에 넣고 조리한 음식물은 병의 봉인이 새지 않는 한 썩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병조림을 만들어 출품, 우승하게 된다. 그러나 병조림은 쉽게 깨졌다.
이 문제는 영국인 피터 듀란트가 1810년 원통형 주석 캔으로 통조림을 만드는 법에 대한 특허를 내면서 해결됐다.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기계식 캔 생산 시스템이 등장한 19세기 중반부터였다. 마침 크림전쟁이나 미국 남북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같은 굵직굵직한 전쟁 덕분(?)에 통조림의 수요도 커졌다.
20세기 중후반 들어서선 전통적인 금속 캔 포장도 여전히 사용됐지만, 우유를 넣기 위한 진공 살균 포장법이나 레토르트 포장법, 동결건조법 등도 등장하며 비닐팩 포장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21세기에는 종교·문화적 이유로 특정 고기를 못 먹는 이들을 위한 식단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미군에서는 피자를 전투식량으로 개발해 시식회까지 했다는 소식도 있다.
과학기술이 고도화되고, 최첨단 무기가 사용된다 하더라도, 이를 운용하는 병력이 작전 중 식사를 못 한다면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
오는 10월 7일부터 17일간 진행되는 계룡세계軍문화엑스포에선 중요한 전투식량의 모든 내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쟁이란 참혹함 속에서 군 부대에선 어떤 식량이 오고 갔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하다.
특히 이 행사에서는 전투에서의 생존을 위한 음식뿐만 아니라, 'K-Military, 평화의 하모니'라는 주제로 전시연출, 이벤트 등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하는 한편, 국제행사 품격에 맞게 해외군악대 등 많은 국가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각국의 軍문화를 몸소 느껴보며 군인의 역사와 미래를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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