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곳에 내다 놓으면 그뿐이지만, 이 일 또한 쉬운 것은 아니다. 예전의 경험을 소환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 일을 마치고 다가오는 몸살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처분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고물상에 팔기로 한 것이다. 양이 전보다 제법 많기에 그 대가로 받는 돈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처리하기로 맘먹고 재활용센터에 문의했다. kg 당 130원을 준다는 답을 얻었다.
이런저런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이곳을 나왔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끙끙대며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리어카에는 제법 많은 폐휴지와 폐박스들이 담겨 있었다. 이를 보고 참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 또한 가시지 않았다. 무척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쌓아놓은 책들을 내가 처리할 것이 아니라 저분들에게 주면 어떨까. 그래 그거 얼마나 된다고 내가 챙기나. 생각 끝에 다시 그 센터에 들어갔다.
"사장님! 형편이 다른 분에 비해 어려운 분들, 그리고 책을 운반할 수 있는 분들, 이렇게 두 분을 골라서 우리 집에 보내주시면 좋겠어요. 불우이웃돕기도 하는 마당에 그분들에게 좋은 아르바이트 거리를 주고 싶네요." "알았습니다. 아마 책을 받게 되는 분들이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다음날 두 분의, 비교적 건강하신 분들이 집으로 오셨고, 쌓여있던 짐들을 모두 가지고 가셨다. 마침 퇴근 시간이 됐고, 가는 길이 재활용센터를 지나가게 되어서 한번 들러보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제대로 옮겼는지 또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다는 답을 들었다. 아마 책이 많아서 다른 때보다 힘드셔서 그럴 것이라는 사장님의 말이 덧붙여졌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폐휴지를 팔러 왔다. 자전거 뒤에는 제법 많은 양의 폐박스가 실려있었다. 여사장님은 흔히 있는 일이란 듯 능숙한 솜씨로 그가 가져온 재활용품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힐긋 보니 5kg 남짓 되어 보였다. 이 정도의 양이면 얼마를 받게 되는 것일까. 2000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무게를 다 잰 사장님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숙련된 솜씨로 돈주머니를 뒤적거린 뒤 자신이 생각한 돈이 맞았는지 주머니에서 이를 꺼낸 뒤 할아버지께 건네주었다. 그런데 돈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손에 분명 건네어졌는데, 어디에도 돈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든 무언가 건네진 거는 사실이었고, 할아버지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스럼없이 받아가셨다.
그런데 건네진 것은 500원짜리 동전 하나였다. 지폐가 아니니 돈이 보이지 않은 것인데, 최소한 2000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이 예상이 어긋나서가 아니라 500원이라는 동전 때문이었다. '세상에! 저 고생을 하고 500원이라니!' 한동안 나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 그러한 의심들이 열악한 현실을 곧바로 수긍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평소 돈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다. 특히 동전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동전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런 거 같다.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은 얼마인가. 그뿐만 아니라 비싼 옷과 신발들, 곧 명품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쉽게 내는 걸까. 재활용센터의 500원이 만들어지는 경로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지출되는 행위들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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