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철원 한탄강의 '주상절리'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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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철원 한탄강의 '주상절리' 길을 걷다

덕천 염재균/수필가

  • 승인 2022-05-29 10:1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2022년 5월 26일(목요일)

아파트 담장에 소담스럽게 핀 붉은 장미가 웃음꽃을 피우며 오고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5월도 중순을 지나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그토록 기대하던 단비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곡성의 기차마을과 장미축제 견학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약속시간 보다 10분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를 태우고 갈 관광버스는 오질 않는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30분 전에 이곳을 지나가면서 5분 동안 기다리다가 다른 경유지를 거쳐 대전ic 근처인 원두막이라는 곳에 차가 서 있다고 한다.

갈려면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에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어찌됐던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일단 수용하고 아내와 같이 택시를 타고 차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교통흐름이 원활하지 않은데다가 신호등마다 멈추는 곳이 많아 2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에 오르니 차에 앉아있는 분들의 원망어린 눈초리가 우리 부부에게 쏠렸다. 아내는 아내대로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우리 부부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다른 부부가 오자 차량은 출발했다. 출발하면서 목적지가 곡성이 아닌 철원의 한탄강이 있는 주상절리로 트레킹을 간다고 하는 인솔자의 말을 듣고는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인솔자는 장미축제로 가고자하는 신청자가 적어 취소했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 사전에 통지를 안 해준 것도 잘못이고 우리도 하루 전에라도 확인을 했다면 이런 예기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가고자 할 때 사전확인은 필수라는 것을 알게 해준 작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철원을 향해 중부고속도로를 달릴 때 차창 밖으로 농촌의 모내기를 끝낸 풍경과 녹음으로 변한 산들에 의해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음성 휴게소에 들러 찰밥과 도라지, 미역, 머윗대 무침, 멸치볶음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전에 산행이나 트래킹을 가는 경우에 대부분 찰밥과 김치, 국이어서 염분이 많아 먹기가 불편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싱겁게 먹어야 된다고 한다.

일주일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고혈압에다 당뇨병 증세가 있다고 해 음식을 먹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짠 음식과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과 빵, 그리고 잦은 음주로 인해 그런 것 같아 앞으로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 가짐을 해본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3시간 이상을 달려 철원의 한탄강이 보이는 '순담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말이나 일요일이 아닌데도 주상절리를 트레킹 하려는 인파들과 차량으로 붐볐다. 차에서 내리자 차량을 운전한 인솔자가 오후2시 20분까지 트레킹과 점심을 먹고 입구와 반대편인 출구에 있는 '드르니 주차장'으로 와야 한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내와 같이 가까이 있는 매표소로 갔다. 입장료가 1인당 1만원이라고 한다. 표를 사면 5천 원 상품권을 주어 철원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철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좋은 정책인 것 같다. 평소에 지갑에 가지고 다니는 '병역병문가증'을 매표소 직원에게 제시하니 50% 할인이 된다고 한다. 3대에 걸쳐 병역을 마친 가문에게 주는 증표가 효력을 발휘하다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드디어 주상절리를 보기 위한 입구로 들어섰다. 강 건너에 펼쳐진 주상절리를 보기 위한 철재바닥과 나무계단 이루어진 잔도 길이 3.6km로 소요시간이 2시간 정도면 충분히 주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잔도길이 가파른 절벽과 우거진 숲속의 그늘에 설치되어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좋은 코스라 불릴 만하다.

평일인데도 나이 드신 분들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부상할 것만 같다. 중국여행시 까마득한 절벽에 설치되어 있는 잔도길 보다는 아찔함을 더하지만 높은 잔도길 위에서 비가 오질 않아서 수량은 적어 보이지만 힘차게 흘러내리는 폭포의 물줄기와 흐르는 한탄강의 물을 보노라면 아내와 내가 허공이라는 높은 곳에 서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주상절리를 감상하기 위한 잔도길은 교량이 13개로 저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이름을 열거해 보면 단층교, 선돌교, 돌개구멍교, 한여울교, 화강암교, 수평절리교, 바위그늘교, 2번홀교, 현무암교, 현화교, 돌단풍교, 쌍자라바위교, 주상절리교가 그것이다. 중간 중간 전망을 보기 위한 쉼터로는 10개가 있고, 전망대로는 3개소가 있었다.

지나는 곳마다 절경이요 숲속이라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곡성의 장미축제장은 그늘이 없어 먼저 다녀온 지인들이 계속되는 불볕더위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잔도길이 경사가 심한 바위산으로 낙석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물도 잘 되어 있었고, 숲이 있는 구간을 지나다 보니 다래나무가 많이 산재해 있어 가을이 되면 먹음직스런 열매를 눈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벌써부터 침이 고이고 있다. 필자는 아내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걷다보니 마지막 지점인 드로니 전망대가 있는 길게 이어진 가파른 계단길이 우리를 기다리며 힘 내라며 응원을 하는 것 같다. 남은 힘을 다해 힘든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출구인 '드르니 게이트'다. 전망대로 가 멀리 있는 풍경을 구경하고 싶지만 우거진 숲으로 인해 시야가 잘 보이질 않아 포기했다.

출구를 빠져나와 점심식사를 하려고 장소를 아내와 같이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인근에는 커피를 파는 가게와 철원농산물을 파는 곳 뿐 이다. 벌판이라 그런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댄다. 커피도 마실 겸해서 가게에서 설치해놓은 파라솔 아래의 벤치에 앉아 가져온 배낭에서 음식 등을 꺼내 식사를 시작했다.

바람과 싸워가며 점심을 먹으니 색다르다. 식사를 하면서 옆을 보니 모내기를 끝낸 모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힘들어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토요일인 부부의 날에 고향마을에 혼자 계신 아버지의 모내기를 해드리고 온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린다.

3.6km의 주상절리 잔도길을 따라 아내와 같이 트레킹을 함께하니 힘들지도 무섭지도 않고 안전하다는 생각에 우리의 사랑과 믿음이 한층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아내와 함께 하면서 생각나는 속담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여행이나 산행 그리고 트레킹을 같은 곳을 가더라도 가는 시기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주상절리를 따라 펼쳐진 녹음이 짙어가는 숲속의 잔도길과 거친 풍파를 견디어 온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방을 만들고 있다. 그 방에서 언제나 꺼내 볼 수 있도록 소중한 보물로 만들고 싶다. 길 위의 독서가 되도록 아내와 같이 트레킹이나 여행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덕천 염재균/수필가

염재균 시인
염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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