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인 부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1000여 명의 사망자 중 650여 명은 폭탄의 파편이 아니라 총에 숨져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학살로 여겨진다는 영국 BBC 보도부터, 고개를 숙이고 일렬로 이동한 우크라이나 남성 8명이 결국 건물 뒷편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것을 바탕으로 러시아 공수부대가 민간인을 처형했다고 고발하는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도 최근에 접할 수 있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수사관과 법의학 전문가, 지원인력으로 구성된 42명의 조사팀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전쟁범죄를 목격한 증인을 인터뷰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총구가 벌이는 대규모 살상의 광기를 멈추게하기에는 조사팀의 역량은 작을 수밖에 없고 더 큰 연대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경험해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 지 아는 우리는 국제사회를 향해 평화와 전쟁범죄 중단을 당당히 목소리 낼 주체이기도 하다. 대전 골령골에서 그리고 옛 대전형무소터에서, 세종의 은고개에서,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충북 청원 오창창고에서 그 총구에 희생된 이들이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들의 후손은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슴 한 켠에 새긴 채 잊으려 지내고 있다. 71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이 2022년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그것도 물질과 기술, 사회구조적 발전을 이뤄 원시적 생활과 비교할 수 없는 문명에 다가섰다는 시대에 말이다. 잘못을 깨닭고 뉘우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학습하고 제도화하는 문명을 러시아에서도 이뤄져 세계를 리드하는 강대국이라고 여겨오지 않았던가.
대전 골령골에는 유해발굴과 함께 평화공원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에서 평화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곳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간인학살의 참상을 지금껏 간직한 대전이 우호협력 협정을 체결한 도시인 하르키우가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왜일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