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행사에 앞서 제의식을 지내는 모습. (오른쪽)'악동어우름' 픙물패가 길놀이로 행사 시작을 알리는 모습.<사진=한세화 기자> |
제342주기 '백호 윤휴선생 추모제'가 20일 대전시 중구 사정동 201-1번지 묘정에서 거행됐다.
이날 행사는 조선후기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양반의 특권을 내려놓는 개혁으로 백성의 아픔을 같이하고자 했던 개혁가 윤휴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첫 추모제인 데다, 지자체가 아닌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산성마을신문이 주최하고 백호 윤휴선생 추모제추진위원회 주관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추모제에는 선생의 10세손인 윤용진 교수의 아들 윤영준 씨를 비롯해 이기전 산성마을신문 대표,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권광순 자문위원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추모제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기전 산성마을신문 대표, 세번째는 윤휴선생의 11세손 윤영준 씨. <사진=한세화 기자> |
추모제가 열린 이날 오전 11시가 되자 풍물패 '악동어우름'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최창희 대전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의 개식에 이어 임세환 산성동 주민대표가 토지신에게 고하는 고유제문 낭독이 이어졌다.
오수남 운영위원장의 경과보고와 이기전 추진위원장의 추모사, 유족대표와 자문위원의 헌사, 추모시 낭독 등이 있었으며, 헌화는 추모제 장소에서 15m가량 떨어진 묘정에서 진행됐다.
묘정에는 윤휴선생과 그의 아버지와 아들까지 삼대의 묘지가 있으며, 묘정 앞쪽으로 길게 늘어선 곳에는 선대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백호 윤휴(1617~1680) 선생은 17세기 산림학자이자 개혁적 사상가로 주자성리학의 교조적 권위를 누렸던 조선후기의 경학에서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와 성리학의 교리를 어지럽히고 그 사상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으로 몰려 정치·사상적 숙청을 당했으며,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결국 생을 마감했다.
대전을 대표하는 인물임에도 역사적으로 불운한 배경 탓에 조선말까지 신원이 회복되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의 의기투합으로 그의 발자취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헌화를 거행하는 모습과 윤휴선생의 묘지 모습. <사진=한세화 기자> |
이기전 백호윤휴선생 추모제추진위원장은 "이번 추모제가 백호 선생의 공적을 널리 알리는 초석이 될 거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선생의 북벌, 신분제 완화, 양극화 해소 등 개혁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할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운하 국회의원은 이날 축전을 통해 "당시에는 '윤휴'라는 이름은 배척받고 금기시됐지만, 개혁과 변화가 요구되는 지금 시대에 유독 생각나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며 "선생을 기리는 행사와 사업들이 확대될 수 있도록 산성마을신문과 추모제추진위원회에서 더 앞장서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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