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로움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행복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즐겁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삶 전체가 행복이 되지 않는가?
학문을 예로 들어보자. 학문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으로, 공부라고도 하고 학습이라고도 한다. 공부는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자 하는 측면이 강하다. 대상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머리로 하는 것이 있고 몸으로 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즐길 줄 모르면 쉽지 않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아시는 바와 같이 논어는 구도의 자세와 사랑이 넘치는 가르침으로 사람을 이끄는 내용이 주다. 즐거움, 기쁨으로 시작한다.
공자는 즐거움에 대해, 사람에게 이로운 세 가지와 해로운 세 가지를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 이른다. "유익한 세 가지 즐거움과 해로운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예악을 절도에 맞게 행하는 것을 즐기고, 남의 선을 말하기를 즐기며, 어진 벗을 많이 가지기를 즐기는 것은 이롭다. 교만방탕의 즐거움을 즐기고, 편히 노는 즐거움을 즐기며, 잔치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해롭다.(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逸樂, 樂宴樂, 損矣.)"
나이를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지신을 돌아보다 문득 깨닫게 된다. 삶이란 부귀영화에 있지 않다. 아름다운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다. 결코 권력이나 부, 명예에 있지 않다. 새삼 옛말을 떠올리게 된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편에 나오지 않는가?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으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는 것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愧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인생을 명확히 구획하기는 쉽지 않다. 대체적으로 30까지는 성장기, 다음 30년은 일하는 시기, 다음 30년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시기이다. 그것을 관통하는 것이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그 요체 중 중요한 하나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 교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배우고, 가르치며 산다. 문제는 그 대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 할머니가 손주 돌보미를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도 있다. 조부모가 함께하면 아이 성장에도 바람직하다. 당연히 사랑이 가득 담기기 때문이다. 밥상머리 교육도 대단한 이점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핵심이 질문과 스토리텔링 아닌가? 그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조부모다. 어린 손주를 둔 나이 먹은 사람 SNS에도 손주 이야기가 많음을 본다. 필자 가정도 다르지 않다. 아내가 아이와 놀다오면 몹시 힘들어하지만, 한편으론 기쁨이 충만함을 느낀다. 우선 귀찮고 힘든 것이 대수이랴?
세계적인 저출산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자,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만들어졌다. 18일 국회입법 조사처가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내놨다. 당연히 각종 제도적 뒷받침이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분위기 일신이다. 정서적 의식문화를 바꾸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생명체는 자식을 통하여 영생을 얻는다. 그로 인하여 사통팔달의 관계를 잇는다. 출산이 본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생존의 목표요 원리다. 행복의 요체요, 젊게 사는 비결이다. 안 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은 대표적인 경우다. 자식 키우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인생의 반을 잃는 것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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